[소설]8월의 저편 203…몽달 귀신 (5)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23분


“가자, 형수하고 같이 밥 묵자.” 인혜는 두 손을 내밀었지만 우근은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내는 엄마하고 같이 갈 거다.”

“밥 다 식는데.”

“형수님하고 먹거라.” 희향이 강경하게 말했다.

우근은 눈길을 발치에 떨어뜨리고 고무신코로 바닥을 툭 차고서는 인혜의 손을 잡았다.

조용한 저녁식사였다.

인혜는 우근에게 꽁치의 뼈를 발라 주었다.

“소원이 누나는 어디 갔는데?” 우근은 뚜껑도 열지 않은 밥그릇과 가지런히 놓여 있는 수저를 곁눈질했다.

“곧 돌아올 거다.” 용하는 여전히 무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련님 입이 비었네예. 꼭꼭 씹어 삼키고 이 묵 좀 먹어 보이소. 도련님이 젤로 좋아하는 거라서 만들었다 아입니까.”

밥을 다 먹고 숭늉을 마시고 있는데 사립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왔나 봅니다” 아랫배가 묵직해서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서 살며시 일어났다.

안방문이 열리면서 희향이 들어왔다. 야윈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들먹거리고 풀무처럼 분주한 숨소리가 네 사람의 귀에 울렸다.

“없어예, 아무데도 없습니다. 야마시타 선생은 평소대로 하교를 했다고 하고, 늘 같이 다니는 인서는, 배다리 앞에서 헤어져서 용두산 쪽으로 걸어갔다고, 밤 주우러 갔다고 해서, 밤나무 숲까지 가서 큰 소리로 불러봤지만, 없습니다, 없어예, 아무데도 없어예. 당신, 파출소에 갈랍니까?”

“경찰이 어디 조선 사람 좋으라고 있는기가, 왜놈들 지켜주고 조선사람 감시하라고 있는 기니까 상대도 안 해 줄 거다.”

“그라면, 우짭니까!”

“진정해라!”

“어떻게 진정하고 있을 수 있습니까!”

“나가서 찾아보겠습니다.” 우철이 일어섰다.

“나도.” 인혜는 남편의 뒤를 따랐다.

“당신은 우근이하고 기다리고 있거라. 홑몸도 아인데.”

우철과 용하와 희향이 안방에서 나가자, 집안이 한층 더 조용해졌다.

“누나 어디 갔는데?”

“밤 주우러 갔답니다.” 인혜는 쿵쿵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려 애썼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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