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뇌물비자, 관리책임도 물어야

  • 입력 2002년 11월 11일 18시 31분


재외공관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비자(입국사증) 장사’는 관련자 몇 사람의 구속으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돈을 받고 무자격자에게 비자를 발급해 입국을 허용한 것은 국가의 주권을 훼손한 중대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간첩도 1000만원만 주면 비자를 받아 입국한 뒤 호적 세탁을 거쳐 한국인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검찰 수사관계자의 발언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무자격자가 입국해 불법체류와 불법취업을 일삼아도 걱정인데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간첩까지 유유히 들어와 한국인으로 행세할 수 있을 정도로 국가 행정망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런 중대한 범죄를 초기에 단속하지 못한 관리책임부터 물어야 한다. 구속된 전 베이징(北京) 주재 양승권 영사와 전 선양(瀋陽) 주재 최종관 부영사는 법무부 소속이기는 하지만 재외공관에 파견근무를 하는 동안에는 공관장의 지휘감독을 받는 외교관 신분이었다. 당시 공관장의 잘못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양씨와 최씨는 장기간 지속적으로 ‘뇌물비자’를 발급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자격을 갖춘 공관장이라면 부하 직원이 브로커들과 거래하면서 드러난 것만 해도 수백명의 자격미달 중국동포에게 비자를 발급하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법무부의 책임은 더 무겁다. 외교통상부 감사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소환한 최씨를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과장으로 보내고, 양씨 또한 김해출입국관리사무소 소장으로 근무하게 한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 비자 브로커들과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계속 출입국관리업무를 담당하게 한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라도 영사업무 종사자의 자질과 자격을 재점검해 다시는 비자 발급과 관련한 불법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한국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남아시아 등 제3세계 주재 공관을 중심으로 유사한 불법행위가 있는지 철저한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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