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李후보 실망스럽다˝

  • 입력 2002년 11월 6일 18시 05분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공과 사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주최로 5일 향군회관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안보강연회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대신해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연설을 마치고 나가자 한 방청객이 옆 동료에게 건넨 말이다.

이날 강연회에는 2000여명의 재향군인 회원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상당수 향군 회원들은 사회자가 “부친상을 당한 이 후보가 오늘까지 공식행사를 모두 취소하는 바람에 못 오게 됐다”고 말하자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주최측의 한 관계자는 “5년 전보다 적어도 600∼700명은 더 온 것 같다. 13개 시도 회장과 224개 시군구 회장이 전원 참석했다, 아침부터 멀리서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이 후보가 이날 강연회에는 참석하지 않고 전직 대통령들을 방문하러 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 화가 난 듯했다.

한 고위 간부는 “한달 반 전에 결정된 약속이다. 650만 향군 회원에게 안보 공약을 발표하는 것보다 전직 대통령에게 인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실망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후보가 안 온다는 것을 알고 일제히 퇴장하자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쪽 표는 그냥 오는 줄 아는가 보는데 큰 오산이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사병 시절의 일화들을 소개하며 50분 동안 자신의 ‘최대 비토세력’을 설득했다. 강연 시간에 맞추기 위해 대전에서 창당대회를 앞당겨 치르고 헬리콥터 편으로 올라온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에겐 20여 차례의 박수가 쏟아졌다.

재향군인회 홍보실 직원은 “회원들이 노 후보의 연설을 듣고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바꾼 것 같다. 정 후보에 대해서도 호감을 표시한 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한 회원은 “만약 이 후보가 나와 ‘부친상을 당해 힘들고 괴로웠지만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고 말했더라면 얼마나 감동했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국민을 상대로 한 공적인 약속과 사적인 ‘조문정치’ 중 무엇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지는 분별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향군 회원들의 지적이었다.

이종훈기자 정치부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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