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미스 티베트

  • 입력 2002년 10월 15일 18시 26분


왜 우리나라에선 제일 아름다운 여성인데 세계 미인대회에만 나가면 번번이 죽을 쑬까. 이 문제로 고민하던 나이지리아의 미인대회 조직위원장이 2000년 심사위원들에게 주문을 했다. 지역적 미인 말고 국제적 미의 기준에 맞는 여성을 뽑아달라고. 새로운 전략은 즉각 성공을 거뒀다. 2001년 미스 나이지리아가 그해 10월, 51년 대회 역사상 첫 아프리카 출신 미스 월드로 뽑힌 거다. 그런데 이번엔 새로운 문제가 터져나왔다. 이 ‘빼빼 마른’ 미스 월드가 부러운 나머지 이 나라 상당수의 젊은 여성들이 거국적 다이어트에 들어선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이지리아에서 날씬함이란 에이즈 환자라는 표시나 다름없었다.

▷인도에 살고 있는 티베트 난민들이 사상 처음으로 미스 티베트를 뽑았다. 오똑하다고는 할 수 없는 코에 굵은 얼굴선, 활달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전형적 티베트 미인이다. 원래 티베트 여자는 발목을 감싸는 치마에 긴 소매 웃옷을 입어야 한다. 티베트에선 날이 추워 목욕을 거의 못하기 때문에 수영복을 입는다는 건 상상도 못한다. 그런데 돌마 체링이라는 이 아가씨는 수영복 심사도 받고, 평상복 심사에선 아슬아슬한 탱크톱까지 입었다. “대회는 젊은이, 특히 여성들을 지원하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똑 부러지게 의견을 밝혔다니 세계화된 감각과 여성 의식까지 지닌 지구촌 젊은 세대인 모양이다.

▷미인대회라는 것이 여성의 미를 상품화한다는 비판은 이곳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통과 문화를 오염시킨다는 지적도 나왔고 달라이라마 망명정부의 삼동 린포체 총리도 물질주의적 행사라고 비판했다.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염원하는 티베트인의 투쟁심을 희석시킨다는 비난에 무산될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업주의의 힘 못지않게 미에 대한 관심과 추구도 인간의 영원한 과제인 것. “티베트 독립투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마련됐다”는 주최측 옹호론대로 행사는 강행됐다. 외신을 타고 기사가 들어온 덕분에 우리도 티베트의 현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미스 티베트도 예쁜 독립군이다.

▷미스 티베트가 티베트 대표로 세계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둘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혹 티베트적 아름다움이 국제적으로 먹히지 않는다고 해도 나이지리아처럼 미인의 기준을 바꿔버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세속적 삶에서는 궁극적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믿는 민족, 물질적 쾌락 없이도 행복한 삶이 있음을 보여주는 티베트에서마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서구적 미인’들만 판친다면 숨이 막힐 것 같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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