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軍의문사 짜깁기수사"

  • 입력 2002년 10월 9일 18시 54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韓相範)는 80년대 군 의문사 사건 25건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군 수사기관 등의 문제점을 9일 발표했다.

이날 진상규명위는 “당시 헌병대 등 군 수사기관이 군대 내 의문사 사건의 경위 및 현장을 왜곡, 조작하거나 비전문가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수사를 자의로 결론짓는 등 수사 과정에 문제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사망 사유에 대해 군 수사기관이 개인적 사유나 신병비관에 의한 자살로 몰고 가 가혹행위 등 타살 가능성이 배제된 경우가 많은 점도 부실수사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다음은 의문사위가 밝힌 대표적인 부실수사 및 조작의 예이다.

▽현장 증거 조작 및 왜곡〓91년 육군 제1사단에서 복무하다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상태로 발견된 남현진 이병(당시 21세)은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도 당시 헌병대는 사망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들을 수거하지 않았다. 또 헌병수사대가 30분간 촬영한 현장사진 11장에는 목을 매단 끈의 종류가 두 가지로 각각 다르게 나타나기도 했다.

83년 사망한 김두황 이병(당시 23세)의 경우 헌병대는 김 이병이 친구에게 보낸 김지하의 시 ‘끝’을 유서로 단정해 전혀 다른 필적을 김 이병의 것으로 잘못 감정한 비전문가의 말을 듣고 자살로 결론지었다.

83년 한영현 일병(당시 21세)은 다른 사병의 총에 맞아 숨졌으나 당시 군부대는 소속 부대장이 문책될 것을 우려해 한 일병이 자신의 총으로 사망한 것으로 현장을 조작했으며 헌병대에서는 총기조작 부분을 파악하고도 묵살했다.

▽허술한 수사 기록 작성 및 보존〓87년 숨진 노철승 상병(당시 22세) 사건 조사에서 헌병대는 검증조서의 각 진술자란에 진술자가 아닌 헌병대 운전병의 무인을 찍어 서류를 조작했다. 83년 숨진 최온순 이병(당시 20세) 사건의 경우 이미 진행된 수사결과에 대해 유족들이 항의하자 이전 자료를 모두 폐기했다.

84년 숨진 임용준 일병(당시 22세)의 사체검안서에는 목에 총상을 입어 숨진 것으로 돼있으나 중요사건 보고서에는 머리에 총격은 입은 ‘두부관통총상’으로 기록돼 있었다.

▽개인문제로 인한 자살로 예단〓 임용준 일병은 고참들에게 상습적으로 심하게 구타를 당했고 그의 군인수첩에도 그런 사실과 내무반 부조리 등이 적혀있었으나 군 헌병대는 가정환경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87년 숨진 이이동 이병(당시 21세)은 숨지기 1, 2일 전에도 고참병들에게 심하게 맞거나 얼차려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군 헌병대에서는 고참병들의 구타는 전혀 없었으며 가정 문제를 비관해 자살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측은 “군 사망사건에 대한 철저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현재 사단 에 속해있는 군 헌병대과 군 검찰의 지위를 독립적으로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며 “특히 의문사가 발생했을 경우 국방부에서 독립된 공신력있는 제3의 기관이 조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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