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충청 자존심에 상처 입히지 말라

  • 입력 2002년 10월 4일 18시 33분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이번 대선에서도 ‘킹메이커’로 나서게 된다면 우리 정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각 정파가 경쟁적으로 JP에게 손을 내밀고 있어 대선 가도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처럼 각 정파가 추파를 던지는 것이나, JP가 요모조모 따져보는 모습이나 이만저만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JP와 자민련을 ‘보따리장수’니 ‘패거리정당’이니 하며 몰아붙였던 사람들의 표변은 더욱 실망스럽다. 이들의 ‘3김 정치 청산’과 ‘정치개혁’ 구호는 다 식언이었단 말인가. 자민련을 ‘고사’시키려 한 것이 언제인데, 이제 와서 색깔과 이념이 같다고 말하는 것도 낯간지러운 일이다. 그런 이유로 손을 잡으려 한다면 진작 했거나, 아니면 대선 후에 하는 게 합당하다.

JP 끌어안기의 근저엔 충청권을 볼모로 하는 파괴적인 지역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기실 피해자는 충청도 유권자들이다. 대선 판세가 유동적일 때마다 JP와 몇몇 주변사람은 줄타기 정치로 잠시 권력의 곁불을 쬘 수 있었는지 몰라도, 충청 유권자들은 결과적으로 언제나 속았기 때문이다.

‘역사와 국민 앞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단행했다고 한 1990년 3당 합당이나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한 1997년 DJP공조만 봐도 정권획득만을 위한 편의적인 동맹은 그 결말이 얼마나 허망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3당 합당이나 DJP공조 모두 성사된 직후부터 동맹세력간의 내홍이 끊이지 않다가 몇 년 못 가 분열과 해체의 길을 걸었다. 또한 그 덕으로 현 정권에서 총리를 지내기도 한 JP는 지난 5년 동안에도 어지러울 정도로 정치곡예를 거듭했다.

각 정파가 그런 JP와의 제휴를 추진하는 것은 그에게 다시 한번 지역주의에 의존한 ‘선거 마술’을 부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그동안 상처 입은 충청 유권자들의 자존심은 안중에도 없는 행위다. 정치권은 더 이상 충청 유권자들을 놀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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