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언제나 책임은 국민이 지는 나라

  • 입력 2002년 9월 30일 18시 45분


실적배당 금융상품의 투자 손실을 공적자금으로 메워준 정책은 책임지는 사람 없이 아무 관련도 없는 전체 국민에게 손실을 골고루 나누어준 처사이다. 주식이나 채권운용으로 신탁 상품이 이익을 내면 투자한 사람이 차지하고 손실이 발생하면 세금으로 물어주는 정책은 투자자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경제의 대원칙에도 어긋난다.

정부가 실적배당 금융상품의 투자 손실을 메워주는 나쁜 선례는 외환위기 직후인 한남투신 사태 때 처음 생겼다. 원리금 보장을 요구하는 고객들의 집단 항의가 거세지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원금 보장을 요구했고 금융감독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탁상품은 운용실적에 따라 배당한다’는 원칙을 깼다. 그러나 일이 잘못되면 정작 책임이 큰 정치권은 뒤로 숨어버린다.

재정경제부와 금감위가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의 펀드 손실을 공적자금 투입으로 막아준 조치도 대우그룹 부도를 막기 위해 투신사 등 금융기관을 끌어들였던 원죄 때문이었다. 투신사의 부실을 털어 내기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이 3조5000억원에 가깝다니 ‘공적자금은 임자 없는 돈’이라는 인식이 아니고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전 국민을 피해자로 만드는 실책을 저질러 놓고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태는 뭔가 잘못돼 있다. 감사원은 해당 공무원들에게 ‘주의’ ‘통보’ 등 가벼운 징계로 오히려 면죄부를 주어버린 느낌이다.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조성된 공적자금을 수조원씩 낭비한 공무원들에게 형사처벌까지는 어렵더라도 과오에 합당한 징계를 내렸어야 한다.

공적자금을 방만하게 집행한 관계부처들이 제 발이 저린지 국회 공자금 특위에 제출한 자료는 전체 요구 건수의 10%에 미치지 못한다. 조사에 반드시 필요한 증인 채택도 순조롭지 않다고 한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한 비리와 정책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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