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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9월 6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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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치른 우리 정치인들이 축구만한 호재를 놓칠 리 없다. ‘히딩크를 대통령으로’ 구호에 질투를 느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17일 대통령 출마선언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박근혜 유럽-코리아재단 이사는 2002남북통일축구경기를 유치해냈다. 남북은 12년 만에 축구를 통한 화합을 다질 판이다. 그러나 5일 대표단 환영만찬에서 오후 7시반부터 밥상 앞에 앉은 선수들은 정 의원, 박 의원의 덕담에 불과한 환영사와 축사를 듣고 VIP들의 네 번에 걸친 건배제의에 응하느라 밤 9시가 되도록 배를 곯아야 했다. 외국 귀빈을 의식한 신라호텔측이 한식을 서양식 코스요리처럼 한가지씩 내놓는 바람에 서툰 칼질을 하던 필자 옆 북한선수는 “밥을 주기는 주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정치인들 때문에, 호텔로 상징되는 재계 때문에 남북선수들이 잠시나마 굶주려야 했다는 건 매우 시사적이다. 우리가 북한에 원조하는 쌀이 북한주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분단시대적 사고방식을 갖고 정치공세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 등쌀에 마땅히 먹어야 할 것을 제때 제대로 먹지 못해 분노하는 사람이 어디 축구선수들뿐일까. 힘있는 외국과 막강한 다국적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내집 식구들을 홀대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과연 신라호텔 하나뿐일까.
▷90년 남북통일축구경기 때도 남한땅을 밟았다는 김창복 중간방어수감독은 “북남선수들은 그악스럽지요. 다른 나라 선수는 못 따라와요. 우리가 같이 뛰면 월드컵 우승도 할 수 있어요”하며 사람 좋게 웃었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월드컵축구대표팀 감독은 경기에선 어느 팀이든 이기겠지만 결국 승자는 남북한의 보통사람들일 것이라고 했다. 옆에 앉았던 한 의원도 월드컵 때 박수 받는 선수들을 보며 ‘우리 정치인’들도 그런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다 싶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요즘 금배지달고 다니기 좀 부끄럽지 않느냐”는 내 물음에 “글쎄,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서…”라며 식사가 나오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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