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피해 인재도 많았다"]"한달전 붕괴제방 늑장복구"

  • 입력 2002년 9월 5일 18시 46분


피해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 이번 수해는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의 측면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피해 사례와 지역 사정에 밝은 주민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인재(人災)’로 인해 피해가 더욱 커진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행정당국의 안일한 수방대책과 반복된 땜질식 복구, 늑장대처, 허술한 안전점검 등 재해 때마다 거론된 문제들이 이번에도 반복됐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배수(排水) 문제〓물바다로 변한 충북 영동군 영동읍 주민들은 계산리 영동4교와 매천리 교량의 상판을 올리기 위해 만든 거푸집을 떠받치는 수백개의 철제 지지대를 영동군과 시행업체가 방치해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폭우 때 떠내려온 쓰레기들이 지지대에 걸려 물의 흐름을 막았다는 것.

경북 김천시 주민들도 “직지천과 감천이 범람한 것은 경부고속도로와 제2김천교 등 교량에 설치된 수십개의 교각에 부유물이 걸려 물의 흐름을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을 하천이 넘쳐 127가구가 침수된 전남 고흥군 여산마을 주민들은 “고흥군이 1995년 여산천을 복개해 주차장을 만든 뒤 해마다 하천이 넘쳐 대책을 요구했으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마을 앞 논 3㏊가 침수된 울산 북구 농소3동 속심마을 주민들은 “북구청이 동천강 한가운데 운동장을 조성하는 바람에 물 흐름을 막아 논이 침수됐다”며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댐, 저수지 관제 문제〓경남 산청군 생초면 12개 마을 368가구 주민들은 “경호강이 넘쳐 침수피해가 난 것은 남강댐이 물을 제때 방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민원을 제기했다.

강원 강릉시 구정면 주민들은 “동막저수지를 관리하는 농업기반공사 강릉지사가 ‘범람을 막기 위해 수문을 열어야 한다’는 저수지 관리인의 건의를 듣지 않아 농토와 가옥 70여채가 침수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석, 절개지 사고〓태풍으로 진입로 10여곳이 유실돼 마을이 고립됐던 울산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주민들은 “진입도로에 급경사 절개지가 많아 평소에도 낙석 사고가 잦았다”며 “그동안 수차례 도로 보수를 건의했지만 묵살됐다”고 밝혔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의 주요 국도 주변 절개지 9300곳 가운데 2000여곳이 낙석과 산사태 위험지역인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번에 피해를 본 국도 115곳 중 절반이 낙석이나 산사태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암반으로 구성돼 있는 산을 깎아낼 때 지질조사를 통해 절리(돌의 깨진 틈새)의 방향을 고려해 깎아내는 각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건교부가 절개지를 일률적으로 63도로 하도록 규정한 것도 낙석 사고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땜질식 복구 및 관리 점검 부실〓경남 합천군 가현리 가현제방의 재붕괴가 대표적인 사례.

지난달 9일 집중호우로 가현제방이 무너졌을 때 경남도 재해대책본부는 “무너진 제방을 응급복구하고 태풍에 대비하라”고 수차례 지시했지만 합천군은 “사고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주장 때문에 어렵다”며 공사를 미뤘다.

합천군은 지난달 29일에야 반원형의 가물막이 공사를 했지만 그나마 기존 제방의 높이보다 낮게 쌓아올려 다시 붕괴사고가 났다.

특히 이번 태풍으로 철도 교량이 끊어지고 철로 유실과 옹벽 붕괴가 잇따랐으나 대부분의 철도사고 지점이 철도청 안전점검에서 ‘이상 무’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안전점검의 정확성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김천〓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영동〓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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