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철인’ 최태원 “퉁퉁부은 손으로 치고 달렸다”

  • 입력 2002년 8월 26일 17시 49분


1000경기 연속출전을 달성한 23일 최태원이 대전 원정숙소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전〓김상수기자 ssoo@donga.com
1000경기 연속출전을 달성한 23일 최태원이 대전 원정숙소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전〓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최태원(32·SK 와이번스)이 꼭 1000경기 출전의 대기록을 달성하던 23일 대전에서 그를 만났다. 약속시간은 오전 11시. 프로야구선수들에게 이 시간은 ‘새벽대’나 다름없다. 야간경기를 끝내고 대개 오전 1∼2시쯤 잠들기 때문에 대부분 선수들이 늦잠을 잔다.

“자야 되는 데 방해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평소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며 “오늘도 오전 8시반쯤에 잠이 깼다”고 답했다.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낚아챈다’는 격언이 머리를 스쳤다.

▽피는 못 속여〓아버지 최영열씨(57)는 태권도 국가대표를 거쳐 현재 경희대 태권도학과 교수. 어머니 양용자씨는 탁구와 소프트볼 선수출신. 최태원은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철인’의 피가 흘렀는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스키선수 출신 아내(박민경씨)와 아이스하키선수 출신 장인(박갑철씨)까지….

아들인 준서(3)도 벌써부터 ‘끼’가 보인다. 최태원의 말을 빌리면 준서는 ‘잠 자는 시간 빼고 가만히 있질 않는’ 스타일. 뛰어다니고 말썽부리고 집에 들어가면 정신이 없단다. 준서를 본 SK 후배들은“형 기록을 깰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아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녀석이 월드컵때는 축구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사실 서운했어요. 그런데 요 며칠전 ‘아빠, 난 그래도 야구가 더 좋아’라고 한마디 하데요. 어찌나 흐뭇하던지…”

▽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최태원의 ‘좌우명’이다. 남들보다 두배이상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앞서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연속경기 출전을 위해 완벽한 준비과정과 정신적인 무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컨대 경기전 스트레칭을 소홀히 한다든 가 하면 꼭 게임에서 탈이 나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어가면 안되죠. 어쩔 수 없이 부상이 닥친다면 ‘반드시 싸워서 이기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사실 최태원의 1000경기 연속출전엔 우여곡절도 많고 위기도 많았다. 거의 매년 부상을 당하고도 경기에 나섰다. 그는 96년 LG 박철홍의 공을 왼쪽 손목에 맞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처음으로 내 포지션을 확보한 그해에 전경기출전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당시 손이 너무 부어 글러브조차 들어가지 않을 만큼 부상이 심했지만 주사를 맞고 뛰면서 이를 악물었죠.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끔찍해요.”

이외에도 98년엔 팔꿈치 부상으로 1년을 고생했다. 최태원은 “팔꿈치가 아파 게임전에 당연히 소화해야 하는 캐치볼을 전혀 안 하고 거의 전경기를 나섰다”고 털어놓는다. 2000년엔 프로야구선수협의회 부회장으로 나섰다가 ‘방출시키겠다’는 통보를 받아 선수생활에 위기를 맞기도 했고 지난해엔 무릎에 물이 차 제대로 뛰질 못했다.

▽때가 됐다〓1998년 9월21일.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철인’ 칼 립켄 주니어는 감독에게 “때가 됐다”며 스스로 경기출전을 포기했다. 그해 마지막 홈경기였던 뉴욕 양키스전을 포기함으로써 립켄은 82년부터 이어져 오던 연속경기 출전을 2632경기에서 마감했다.

최태원은 “스스로 결단을 내린 그를 존경한다”며 “나도 언젠가는 연속경기 출전을 마감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야구가 싫어질 때가 몇차례 있었습니다. 부상이 너무 심한데 그래도 경기에 나가야 할 때하고 지난해 야구를 못하면서도 경기에 나갔을 때였어요. 주위의 시선보다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쓸모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팀에 내가 필요없다고 느껴질 때 주저없이 기록을 중단할 생각입니다.”

대전〓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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