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상인/´지역할당제´ 보다 중요한 것

  • 입력 2002년 8월 22일 18시 15분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지역할당 입학제 추진 노력에 갑자기 탄력이 붙고 있다. 지난달 정 총장의 생각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찬반 여론이 엇갈리는 가운데 관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인구 비례에 의한 지역할당제’라는 당초 발상은 누가 봐도 현실적으로 무리였기에 갓 취임한 신임 총장의 ‘개인 구상’ 정도로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13일 이후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군별(郡別) 1, 2명 할당’ 방식의 선발 범위 대폭 축소, 2004∼2007년을 목표로 설정한 추진 일정, 그리고 주무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의 이상주 장관의 지지와 격려 등에 따라 서울대의 지역할당제 도입 계획의 실현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또한 교육계의 동향과 시중의 여론도 ‘원칙적 찬성’ 쪽으로 기우는 것이 대세다.

▼교육부 지지…´과속´ 양상▼

물론 반대 의견들도 아직은 집요하다. 우선 지역할당 원칙에 대한 논리적 불신이 있다. 압도적으로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서 서울대 신입생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도권 인구 집중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성찰을 선행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역차별을 우려하는 것이 이른바 신중론이다. 그러나 훨씬 더 심각한 우려 대상은 현행 입시제도 하에서 엄연히 실재하는 교육기회의 불평등이다. 기회 균등의 신장을 위한 적극적 차별 철폐조처의 확대는 사실상 인류 역사의 미덕이자 진보다. 지역할당제의 사회통합 효과에 대한 회의론도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입시나 대학 서열이 초래하는 학력사회 및 학벌사회의 폐해를 겸허하게 인정한다면 서울대 총장의 ‘사회적 약자 배려’ 주장을 폄훼할 염치는 누구의 몫도 아니다.

현행 농어촌 출신자 특별전형과의 관계조정이나 지방으로의 서울 학생 역류 가능성 등을 따지는 것 등은 일의 성사를 발목 잡는 지엽적인 비판일 뿐이다. 더욱이 서울대 입학생들의 자질 하향을 걱정하는 것에는 기득권 세력의 기우와 오만까지 엿보인다. 올해 농어촌 특별전형을 통해 서울대에 처음 입학한 학생들의 1학기 성적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 대부분이 교육 장사치나 입시 기술자들에 의한 사회경제적 ‘가공(加工) 학력’ 없이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청사진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지역할당제 입시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따지기 전에 현행 입시제도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 입시의 지역할당제 도입은 사실상 교육개혁의 ‘작은 출발’에 불과한 것이다. 입시과정에서 지역적, 계층적으로 뒤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발상 자체는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를 재생산하는 교육구조의 개혁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일부에 대한 특혜적 배려로 그칠 경우 국내 고등교육의 서울대 독주 지배체제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에게 서울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특별히 제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과 가까운 지역 안에서 서울대 못지않은 우수 대학을 많이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지방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겠다는 ‘개혁적’ 서울대 총장의 주장에도 서울대 중심주의의 관성은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서울대 우월주의, 서울지역 중심주의를 전제로 하는 대학입시의 지역할당제는 가뜩이나 벌어지는 서울과 지방간의 교육격차를 가속화할 공산이 높다. 이런 점에서 교육부가 서울대의 지역할당제 계획을 지지하는 일이나 다른 유수 사립대학에까지 권유하는 일은 다소 앞서가는 일로서 별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범국가 차원서 공론화 필요▼

그러므로 진정 염려스러운 것은 서울대의 지역할당제 계획에 대한 일부의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여론의 지지와 교육부의 지원 속에 그것이 너무 급속히 추진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정 총장에 의해 제기된 서울대 입시의 지역할당제는 서울대 내부문제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의 실천 여부에만 관심이 모아질 사항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전반적인 발전이나 서울과 지방간 발전격차 해소, 미래를 위한 인적 관리 등과 함께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할 범국가적 사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에서 서울대가 차지하는 법률적 위상이나 상징적 위치를 고려할 때, 차제에 불거진 교육기회의 불평등 문제는 사회 전반적으로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법이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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