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탁 안 하면 진급 못 하나

  • 입력 2002년 8월 15일 18시 09분


10월 정기 인사를 앞두고 이준(李俊) 국방장관이 내놓은 공개 경고는 우리 군의 인사청탁 관행이 얼마나 혼탁한 지경에까지 왔는지 잘 보여준다. 이 장관은 엊그제 진급관련 내부 간담회에서 “취임 후 한 달여 동안에 10여건의 인사청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언제적부터 문제가 되어 온 일인데 아직도 청탁 안 하면 진급하기 어려운 풍토라니 개탄스럽다.

군내 인사청탁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아태평화재단 상임이사의 자택에서 전직 해군참모총장의 인사청탁 문건이 나와 물의를 일으켰고, 올 초에는 전직 병무청장이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될 때 국방을 책임진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인사청탁이 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군 인사는 국가생존 문제인 국방력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타분야보다 더욱 엄정해야 한다. “돈을 건네면 나중에 돈을 뽑을 생각을 한다”는 이 장관의 말처럼 뇌물로 지휘관 자리에 오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사심 없이 맡은 바 국방 임무에만 충실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군 인사 적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마당에 공정한 경쟁이 아닌 비정상적인 수법으로 진급이 좌우된다면 군의 사기는 필연적으로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이 장관의 이번 발언은 현 정부의 마지막 군 인사를 어느 때보다 공정하게 치르겠다는 다짐으로 읽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 장관은 “지금까지 받은 인사청탁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지만, 차제에 우리는 인사청탁을 한 사람들의 면면과 그 방법도 공개돼야 한다고 본다. 인사청탁을 한 사람들이 정치권 인사 등 사회지도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군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경각심을 주고 예방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명단은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장관의 경고가 깨끗한 군 인사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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