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노형/부처별 통상전문가 키워라

  • 입력 2002년 7월 18일 18시 03분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00년 한중 마늘협상의 합의문 부속서에 ‘2003년 1월 1일부터 중국산 냉동·초산 마늘을 한국 민간기업이 자유로이 수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보도에서 인용된 이러한 문구를 한국 정부가 2003년부터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서 인용된 정부 부처는 이 세이프가드의 연장 불가가 합의된 것임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통상법을 전공한 필자가 볼 때 한중 마늘문제는 많은 문제점과 교훈을 주는 사건이다.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가 당시 여당의 국회의원 선거전략 차원에서 발동되었다고 비난받은 것이나 중국이 휴대전화기 등에 비합리적으로 과도한 보복조치를 취한 것, 한중 협상 결과에 따라 세이프가드의 발동 중에도 중국산 마늘을 의무적으로 수입한 것 등이 그것이다.

▼국내법 무시한 외교실책▼

개인간 협상이든, 정부간 협상이든 현명한 협상이 되기 위해서는 협상 결과가 정당성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2000년에 수행된 한중 마늘협상에서 ‘2003년부터 세이프가드를 발동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는 것은 관련 세계무역기구(WTO)법과 국내법에 따라 정당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WTO법에서 세이프가드의 발동이 연장되기 위해 수입국은 별도의 조사를 수행한 후 국내 산업에 대한 심각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이 조치의 연장이 필요하다고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2000년 한중 협상에서 한국이 3년 뒤에 있을 세이프가드의 발동을 연장하기 위한 조사 수행 등의 권리를 미리 포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WTO법에 따르면 세이프가드의 연장을 위해 사전에 이해 관련국과의 협의가 요구된다. 따라서 한국은 2003년 세이프가드를 연장할 때 사전에 중국에 협의할 기회를 주도록 되어 있다. 당시 한국이 중국에 이러한 WTO 규범을 충분히 설명했다면 이 같은 불합리한 합의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세이프가드의 발동 절차를 규정한 국내법에 따르면 세이프가드의 연장은 무역위원회의 조사와 연장 건의에 따라 재정경제부장관 등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2003년부터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의 발동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는 것은 정부의 관련 부처가 자신의 활동 권한에 관한 국내법을 무시한 처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당시 휴대전화기 등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로 한국의 경제적 손실이 상당해 가능한 한 빨리 중국과의 합의를 도출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중국에 세이프가드의 발동 연장에 관한 국내법 준수의 불가피함을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다. 결국 한중 협상에 관여한 정부 당국이 WTO법은 물론 관련 국내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현 정부가 외교통상부를 설치해 통상외교능력을 제고하는 노력을 보이면서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한미 양자투자협정(BIT) 협상 등 주요 통상정책 운영에서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난맥상은 통상정책 실무 부서의 문제라기보다는 통치자의 리더십 부족과 그로 인한 통상정책 조정 능력의 상실이 근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WTO의 분쟁 해결에서 한국만큼 선방하고 있는 회원국은 많지 않다.

▼통상 조정능력 제고 급해▼

특히 정부는 미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승소하는 등 큰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 마늘 파문이 있게 된 것은 아직도 정부의 통상정책이 그 수립과 집행에서 개선될 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정부 내에서 통상정책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포진하고 있는 통상교섭본부 내에서도 통상법과 협상에 대한 이해를 제고시킬 필요가 확인되었다. 또한 통상교섭본부와 함께 통상정책 내지 협상을 수행해야 하는 산업자원부 농림부 등의 현업 부처에도 통상법 전문가가 확충될 필요성이 확인되었다.

현 정부는 물론 내년 출범할 새 정부도 그동안 통상정책의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겸허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한중 마늘협상 파문은 관련 정부 부처 사이의 책임 회피보다는 현 정부 전체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이런 파문이 재연되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노형 고려대 교수·국제경제법, 통상법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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