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정희/張서리 도덕성 꼭 검증을

  • 입력 2002년 7월 14일 18시 44분


월드컵 4강 신화가 정말로 신화처럼 오래 전의 일로 느껴지는 것은 어쩐 일인가. 월드컵의 열기는 축구경기장으로 이어져 프로 축구 K리그 경기장에는 수십만 명의 팬들이 운집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함성은 아직도 귓전에 머물러 있건만 김홍업씨 뇌물수수로 인한 구속과 기소, 서해교전사태에 따른 햇볕정책에 대한 논쟁으로 ‘하나 됨’의 월드컵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또한 선거중립내각 구성과 민심 수습 차원에서 이루어진 7·11 개각은 국민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표류했고, 결국 개각의 후유증은 더운 여름을 더욱 짜증나게 하고 있다.

▼강도 높은 인사청문회 필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여성 국무총리서리에 지명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정치 사회적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신중한 숙고와 충분한 인사 검증을 거치지 않고 장상 총리서리를 서둘러 지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21세기는 여성이 국운을 좌우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첫 여성 총리를 발탁했다”는 박지원 비서실장의 발표와는 달리 정치적 공세의 방패막이로 여성 총리를 내세우려는 의도가 앞섰던 것은 아닌가. 공직 경험이 없는 장상 총리서리로서 권력비리와 부패로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고 서해교전사태로 흐트러진 국정을 쇄신하기란 큰 부담이며 대통령 선거를 5개월 앞두고 내각을 효율적으로 장악한다는 것도 벅찬 일이다. 김 대통령은 장상 총리서리의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고 청와대와 총리실간의 업무 조율을 위해 김진표 대통령정책기획수석을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에 임명하였으나 실제로 이러한 인사조치는 청와대 비서실이 총리실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비춰진다.

부드럽고 무색 무취의 비정치적 여성 총리를 방패막이로 세우고 내각은 청와대에서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장상 총리서리를 내세웠다면 이는 여성의 역할 증대와 지위 향상이라는 본질에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다.

장상 총리서리의 국가관과 도덕심에 대한 의구심은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장상 총리서리가 “총리가 될 것으로 생각했으면 장남의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어머니가 총리 인준을 받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회복하겠다는 아들의 효심도 어째 어색하게만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손녀 원정출산 문제가 재론될 것을 우려해 장상 총리서리 장남의 국적포기문제를 어정쩡하게 넘겨버리거나 재·보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성계와 여성표를 의식해 인사청문회의 강도를 낮추어서는 안 된다.

법무부장관과 보건복지부장관 교체 과정의 정치적 의혹도 밝혀져야 한다. 송정호 전 법무부장관의 퇴임 발언에 비추어보면 대통령 아들들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측의 선처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 따른 괘씸죄로 경질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김홍업씨와 관련한 ‘선처 압력설’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이태복 전 복지부 장관이 물러나면서 제기한 ‘다국적 제약회사 로비설’도 국회에서 정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이 전 장관이 추진해온 제도개혁은 약값 인하 기준을 평균가에서 최저가로 바꾸고, 약품의 약효를 재평가해 약값을 낮추는 사업과 고가약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참조가격제 도입 등이 그 핵심이었다. 만에 하나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해 중점 추진해온 보험 약가 정책에 저항해 국내외 제약사의 로비가 개각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인사 정책의 투명성을 위해서라도 그 동안의 정책 추진 과정과 로비 활동에 대한 명확한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

▼'주전선수'교체 고려할 만

이번 개각이 민심을 진정 수습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신건 국가정보원장과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조치가 있어야 했다. 국정원 수장으로서 대통령 아들에게 ‘떡값’을 제공한 사실에 국민은 허탈해하고 있다.

월드컵을 지켜보면서 모든 국민이 공감한 일이지만 경기의 마지막 10분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적절한 선수 교체가 승부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7개월을 제대로 마무리할 선수 교체 1단계는 만족스럽지 않다. 지금이라도 주전 선수를 바꿔보는 것이 어떠할지. 축구 경기에는 3명의 선수 교체만 가능하지만 개각에는 그 제한이 없다. 끝까지 안정환 선수를 믿고 맡기는 거스 히딩크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승리를 위해 과감히 홍명보 선수를 교체하는 결단력이 4강의 신화를 창조했다. 아직도 시간은 남아있다. 역전과 재역전의 드라마를 벌써 잊었는가.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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