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일본]“사랑해요, 아일랜드”

  • 입력 2002년 6월 21일 18시 27분


20일자 일본의 한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조별리그에서 프랑스, 아르헨티나가 패배했다. 16강에서는 이탈리아가 사라졌다. 월드컵의 재미는 반감했다. 21일 금요일부터 8강이 격돌한다. 4강과 우승결정전으로 나아가겠지만 월드컵은 거의 대부분 끝나버린 것이 아닌가.”

물론 이런 기사보다는 “월드컵의 재미는 이제부터”라든가 “의외성이야말로 월드컵을 더욱 월드컵답게 한다”는 보도가 많긴 하다. 그러나 역시 자국팀이 없는 월드컵은 어딘지 김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더욱이 일본이 8강에 진출하지 못했는데도, 여전히 일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팀’이 있다. 16일 결승토너먼트 첫 시합에서 스페인에게 패해 모습을 감춘 ‘녹색군단’ 아일랜드팀과 그 서포터스다. 일본인들 중에는 아일랜드를 응원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많은 일본인들은 “선수들은 끈기가 있고, 서포터스는 젊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4경기 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3-0으로 이긴 것을 제외하고는 독일, 카메룬,스페인과의 시합에서 모두 1-1로 비겼다. 그러나 선제골을 터뜨린 적이 없다. 특히 독일전에서는 후반 루스타임에 동점골을 따냈고 스페인전에서도 종료직전에 동점골을 터트려 연장전과 승부킥까지 가는 열전을 벌였다. 한마디로 아일랜드는 포기하지 않는 팀이라는 인상을 줬다. 매너도 깨끗했다. 조별리그때 일본에 온 아일랜드 서포터스는 최소 6000명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의 서포터스 중에서 가장 많았다. 인구가 380만명밖에 안되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다. 도쿄(東京)의 유흥가 롯폰기(六本木)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이들에 대해 술집주인들은 “아무리 취해도 실수를 하지 않고 다른 문화와 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명랑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도쿄신문이 자신들을 좋게 소개한 기사를 싣자 아일랜드 서포터스는 “표가 한 장 남아있는데 같이 응원하러 가지 않겠느냐”며 의외의 제안을 했다. 도쿄신문은 이를 받아들여 아일랜드의 조별리그 마지막경기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를 동행 취재해 보도했다. 일본인들은 아일랜드가 ‘동양적인 정서’를 갖고 있다며 ‘작은 감동’을 느꼈다.

아일랜드 서포터스는 니가타(新潟) 미야기(宮城) 요코하마(橫濱) 등 자국팀의 경기가 열리는 곳으로 오갈 때 전차 안에서 만나는 일본인을 붙잡고 인사를 하거나 ‘닛폰, 사이코(일본, 최고)’를 외쳐 인기를 끌기도 했다.아일랜드팀과 서포터스는 8강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일본에서는 어떤 나라보다 훌륭한 민간외교관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규선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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