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50년만에 다시 뭉친 한국-터키 ‘우정’

  • 입력 2002년 6월 3일 23시 39분


“50여년 만에 가장 많은 터키인이 한국을 찾았을 겁니다.”

브라질과 터키의 조별리그 C조 첫 경기가 열린 3일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 경기 시작 전 멀리 원정응원을 온 3000여명의 터키인들은 감회 어린 표정으로 터키 국가를 힘차게 따라 불렀다.

터키가 어떤 나라인가. 한국전쟁에 1만5000명을 파병했고 이 가운데 사망 1000여명, 부상 2000여명으로 참전 16개국 중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한국의 혈맹이었다. 경기장에 메아리친 그들의 목소리는 낯선 땅에서 목숨을 잃은 이름 모를 터키 병사에 대한 진혼곡처럼 들렸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휴가를 내고 처음 한국을 찾은 마르시(26)는 “한국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기꺼이 다시 와서 도와주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한국전에 참전한 친지가 있다는 알리(40) 역시 “한국을 제2의 모국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인지 이날 경기장에는 터키를 응원하는 한국 관중이 유난히 많았다. 터키 응원 서포터 700명이 단체 유니폼을 입고 응원전을 펼쳤고 붉은 악마 회원 일부도 가세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김진용씨(42·자영업)는 터키 국기까지 등에 두른 채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린 나라인데 당연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유학을 온 알라딘(23)은 “요즘 한국의 젊은층은 과거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월드컵을 통해 터키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희망을 밝혔다.

비록 이날 승부에서는 터키가 전반 리드를 못 지키고 역전패했지만 한데 뒤엉켜 열띤 함성을 보낸 한국과 터키 응원단에는 서로의 이해를 넓힌 소중한 무대였다.

울산〓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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