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공자와 마르크스는 이웃사촌? '유가사상과…'

  • 입력 2002년 5월 31일 17시 54분


유가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이철승 지음/304쪽 2만원 심산

공자는 문묘(文廟)로 찾아온 마르크스를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그의 사상이 자신의 생각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점을 발견하고 상당히 고무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를 긍정하고 ‘대동적(大同的)’ 세계를 추구하며 물질적 부를 중시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신의 사상이 실현은커녕 이해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마르크스에게 이렇게 탄식한다. 만약 어떤 이가 자기 생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당신의 사상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이는 중국의 역사학자 구오무루오(郭沫若)의 ‘마르크스 공자 사당 방문기’(馬克斯進文廟·1925)라는 콩트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가 마르크시즘을 중국화하기 위해 지어낸 가상의 대화지만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공자의 대동세계와 마르크스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다르다. 전자가 원시 공산사회에 대한 먼 기억과 동경이 반영된 이상적 세계라면 후자는 현대적 여러 조건을 기초로 해서 사회를 개조하는 구체적 방안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는 근(현)대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 때 유행했던 유교자본주의론도 이 콩트 속의 이야기처럼 희화적이다. 유교자본주의론은 공자와 마르크스의 만남처럼 서로 어색해 보이는 ‘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을 결합시켜 유교가 더 이상 역사 발전의 장애물이 아니라 동력이라고 심각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이 논의는 근(현)대화에 관한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또한 프로테스탄티즘이 아니라 유교라는 우리 전통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서양적 가치를 거절하는 것 같지만 서방에서 기원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세계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철저한 긍정이다. 유교의 가치에 입각해 자본주의를 좀더 인간의 얼굴을 한 그것으로 만드는 논의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와 관련된 논의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자취를 감춘 것을 보면 구오무루오의 콩트와 달리 얼마나 현상 추수적이고 결과론적이었는지가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유교자본주의론에 대해서 일본의 저명한 중국사상사가인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는 현상적 유사성을 가지고 유교와 자본주의의 친연성을 주장할 수 있다면 유교는 차라리 사회주의와 가깝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유가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이 서로 배척해야 할 관계가 아니라 영향을 깊게 주고받는 관계임을 밝히고자 한다. 중국의 사회주의 정권은 유가사상을 탄압했다고 간단하게 치부해버리는 통념이 아직도 지배하는 우리 현실에서 이런 작업은 낯설어 보이지만 현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검토해봐야 할 소중한 작업이다.다만 저자가 ‘공자’와 ‘마르크스’의 만남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에 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것은 안이한 접근이다. 왜냐하면 많은 중국의 지식인들이 유교와 결합한 중국식 사회주의가 봉건적 사회주의였다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유가의 사상은 생명력을 가진 비판 사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주류 이데올로기와 자주 결합해버리는 것일까?

황희경(성심외국어대 교수·중국철학)

disha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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