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살린사람들(7)]기타가와 마사야스 日미에현지사

  • 입력 2002년 5월 19일 19시 54분


《7년간 ‘생활자 기점(生活者 起點)’이라는 주민중시 정책과 ‘적극적인 정보공개’라는 두 개의 슬로건으로 지방정치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기타가와 마사야스(北川正恭·57)지사. 6일 오후 나고야(名古屋)에서 남쪽으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미에(三重)현의 현청소재지 쓰(津)시를 찾아 그를 만났다.》

지사실이 있는 현청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각 사무실 입구 위에 달려 있는 ‘예산조정팀’ ‘인재정책팀’ ‘특정주요과제팀’ ‘세무정책팀’ ‘경영기획팀’ 등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들이었다. 어느 대기업에 와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기타가와 지사는 2002회계연도가 시작되는 4월 1일부터 기존의 ‘부(部)’ ‘과(課)’ ‘사무소’ ‘상담소’ 등의 이름을 모두 ‘그룹’ ‘팀’ ‘프로젝트’로 전면 개정했다. 구태의연한 ‘부’와 ‘과’의 벽을 깨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주민을 위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도록 조직의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부서 명칭을 이렇게 전면 개정한 것은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중 미에현이 유일하다. 기타가와 지사 특유의 ‘생활자 기점’이라는 정책방향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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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일본의 민주주의는 미숙했다. 생산자나 공급자를 중시하고 소비자를 무시했다. 기껏해야 주민이나 시민이 계속 요구하면 행정이 이를 들어주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금을 받는 쪽(택스 이터·Tax eater)이 아니라 세금을 내는 쪽(택스 페이어·Tax payer)을 중시해야 한다. 더구나 미리 돈을 내기까지 하는 납세자 쪽이 당연히강해야 하는데도 지금까지는 관존민비(官尊民卑)라고 해서 그 반대였다. 학생이나 미성년자 등은 세금을 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민을 총칭하는 단어로 나는 ‘생활자’라는 용어를 쓴다. 돈을 내는 사람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발상이 ‘생활자 기점’이다.”

기타가와 지사는 이에 대해 경제계에서 말하는 ‘고객만족’과 같은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이 ‘고객만족’을 위해 기타가와 지사가 도입한 정책 중 대표적인 것이 ‘사무사업평가 시스템’. 거의 모든 사업을 ‘목적과 성과’ ‘사업환경’ ‘기존사업 평가’ ‘개혁방향’ 등 4가지 관점에서 평가해서 사업착수와 계속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는 ‘PDS사이클’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일본의 행정에는 P(Plan·계획)와 D(Do·실시)는 있었으나 S(See·평가)의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예산낭비가 있었다는 것. 기타가와 지사는 쉽게 이를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이라는 말로 직원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사업을 할 때 늘 ‘어느 것이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가’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말이었다. 주민 이외의 기준은 모두 배제하라는 주문이었다.

기타가와 지사는 ‘고객만족’의 정책을 펴기 위한 전제조건이 ‘정보공개’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주민이 제대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것은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정보를 쥐고 있기 때문에 우쭐대 왔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잘못된 관계는 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 자신도 정보공개를 할 때 ‘이런 것까지 공개를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갈등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해놓고 보면 긍정적 효과가 많기 때문에 정보공개는 더욱 활발해진다.”

그는 ‘요구하니까 해준다’ 식의 소극적인 인상이 있다며 기존의 정보공개조례를 대폭 개정해 현청이 주민의 요구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공개하는 ‘정보제공’과 주민들이 의사를 정책결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정보공유’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지사가 되기 전인 94년 570건에 불과했던 정보공개건수가 2000년에는 3만8299건으로 급증했다. 환경, 경리, 개발, 입찰 등에 관한 공개요구가 가장 많다. 2001년 ‘시민 옴부즈맨’이 발표한 전국 도도부현 정보공개 종합순위에서 미에현은 3위에 올랐다. 시민단체들은 “정보공개는 주민운동에 전문가나 학자가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말한다. 그만큼 주민들이 행정을 감시하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기타가와 지사도 이 제도의 덕을 본 적이 있다. 그는 3000여 종류나 되는 보조금 중 275건은 필요가 없지 않느냐며 이를 공개하고 현의회에 논의를 요청했다. 그 결과 202건이 필요없다는 결론이 나와 폐지됐다. 예전처럼 이를 공개하지 않고 논의를 했다면 보조금을 받는 단체들의 반발로 한 건도 없애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기타가와 지사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반발이 강했고 아직도 그런 분위기는 남아있다”면서 “공무원들의 의식개혁수준은 목표치의 50∼60% 정도지만 반드시 목표점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나는 기존의 ‘조정형’ 행정가가 아니라 ‘목적달성형’ 행정가로 평가받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공직사회 정화계기 96년 '가짜 출장사건'▼

기타가와 지사의 개혁성향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이 소위 ‘가짜 출장사건’이다.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결과는 엄청났다.

기타가와 지사가 취임한 뒤 1년 뒤인 96년 5월. ‘현 감사위원사무국 직원 3명이 95년 1월 17일 고베(神戶)시를 통과해 2박3일간 사가(佐賀)현에 출장을 갔다’는 기록이 공개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95년 1월 17일’은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날이어서 이곳을 거쳐 출장을 갔다는 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시민단체가 감사위원 등을 횡령혐의로 고소하고 언론의 취재경쟁이 붙으면서 문제는 확산됐다.

기타가와 지사의 결정은 빨랐다. 그는 7월 “현청 전체를 대상으로 가짜 출장여부를 조사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직원들은 “우리들의 문화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냐” “지사가 쇼를 한다”며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기타가와 지사는 “현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조사기간은 94, 95년으로 한정했다. 조사방법은 모든 직원들이 스스로 신고토록 하는 ‘자진신고’방식을 택했다. 제대로 될까 하는 의문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 자신신고를 하면 지사가 책임을 지겠지만 나중에 드러나는 비리는 직원 개개인의 책임”이라는 ‘최후통첩’에 ‘1엔도 빼놓아서는 안되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9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2년반동안 ‘가짜 출장’ ‘허위 초과근무’ 등으로 만든 비자금이 무려 11억엔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돈은 과장급 이상 600여명의 간부가 분담해 전액 변상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출장비와 접대 및 회의, 회식에 든 음식값은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 시민단체는 조사결과가 납득할 만하다며 소송을 취하했다. 이 사건은 위기를 오히려 정신개혁의 찬스로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시민단체가 본 공직개혁▼

현정(縣政)을 감시하는 입장에 있는 시민단체는 기타가와 지사의 개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33년간 미에현청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뒤 시민단체 ‘지방자치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시민정보지 ‘미에로부터의 바람’을 발행하고 있는 미야니시 도시히데(宮西俊秀·64·행정서사·사진)는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기타가와 지사는 시대를 내다보는 눈이 있는데다 ‘Policy(정책)’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가로서의 좋은 자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타가와 지사가 아니었다면 다양한 정보공개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보공개도 점진적으로 하지 않고 한꺼번에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야니시씨는 현청 직원들의 의식개혁 수준에 대해서는 “아직도 ‘바뀐 척만 하는’ 현청 직원들이 상당수 있는데다 중앙에서 벗어나 출장소나 지방으로 갈수록 의식개혁 수준이 떨어진다”고 꼬집는다.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사권을 가진 지사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는 의식을 가진 직원들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지사는 주민들이 높이 평가하는 직원들을 인사에서 우대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미야니시씨는 또 기타가와 지사가 그만두더라도 그의 정책을 이어받을 뚜렷한 지사감이 없다는 것을 걱정했다.

쓰(미에)〓심규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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