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武로 달랜 신분 차별의 恨 ‘조선의 협객 백동수’

  • 입력 2002년 5월 9일 16시 46분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전기란 한 개인과 시대가 어우러지는 이중주”라 했다. 그리고 전기작가는 시대와 삶을 교직(交織)시키기 위해 해당 인물에 대한 철저한 조사, 연구, 취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작가의 발품, 눈품 횟수에 비례하는 ‘정직한 상상력’을 강조한 점이 흥미롭다.

김영호의 ‘조선의 협객 백동수’는 이 조건을 다 갖춘 전기다. 먼저 이 책의 저자가 전문 연구자나 작가가 아님을 밝혀둔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민족무예의 맥이 끊긴 것이 안타까워 18세기에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조선후기 무예훈련 교범서)를 다시 꺼내든 무예인이다. 그가 정조시대의 기록을 들추는 과정에서 ‘무예도보통지’의 편찬 총감독 백동수를 발견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서얼 출신에 무관이요, 문집은커녕 행장조차 남아 있지 않은 200년 전 인물 백동수의 전기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와 교우하던 성대중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성해응 등 당대 선비들의 글에서 백동수의 흔적을 찾아내고, 18세기 조선시대 무사와 선비들에 대한 기록을 샅샅이 뒤진 결과, 겨우 한 사람의 전기를 꾸릴 만큼 사료를 모을 수 있었다. 집필을 마치기까지 자그마치 7년이 걸렸다고 한다.

무사 백동수는 1743년 한성 남부 명철방 청교동에서 수원 백씨 사굉의 장자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경종 때 신임사화에 말려들어 옥사한 평안도 병마절도사 백시구(훗날 의리를 지키며 죽은 五節度 중 한 사람으로 꼽힘)였다. 그러나 첩의 자손인 백동수는 문과에 응시할 수도 없었고 무과에 급제하더라도 하급 무관으로 평생을 보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그는 같은 서얼 출신의 이덕무(처남), 박제가와 형제의 연을 맺고 함께 울분을 달랬다.

반가의 사내아이들이 과거에 대비할 때 동수는 검술에 몰두했다. 당시 민간에서 ‘홍길동전’을 비롯하여 ‘임경업전’ ‘조웅전’ ‘유충렬전’ 등 영웅소설이 널리 읽혔음을 볼 때 의협심에 불타는 소년이 협객이 되려 한 것은 이상할 게 없다. 그는 숙종 때 검선(劍仙)이라 불리던 김체건의 아들 김광택에게 검법을 전수받는 한편, 단학으로 내공을 쌓고 만약의 부상에 대비해 의술까지 익혔다. 여기에 시, 서화에 능하고 전각 솜씨까지 뛰어난 이 협객은 금세 장안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1771년 무과에 합격했으나 관직 수가 턱없이 부족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한 백동수는 산골에서 10여년을 보내며 무예를 연마했다. 이후 정조가 새로운 군제인 장용영을 조직하면서 서얼 무사들을 등용할 때 그는 창검의 일인자로 추천받았다. 1788년 마흔다섯에 드디어 장용영 초관에 임명되고, 이듬해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새로운 무예서 간행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덕무는 앞 시대에 간행된 병서를 검토하고 무예원리를 정리하는 작업을 맡고 백동수는 발로 뛰어 문헌기록을 하나하나 고증했다. 이렇게 해서 지상무예 18기와 마상무예 6기를 총정리한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되었다. ‘무예도보통지’는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는 조선 무사의 모습을 복원했을 뿐 아니라, 실사구시를 앞세운 북학 정신을 담아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조의 서거 이후 장용영은 해체되고 개혁인사들, 특히 무장들이 축출되는 과정에서 백동수는 벼슬자리에서 쫓겨나 유배된다. 서얼 차별이 부활되는 등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었다. 결국 1816년 백동수는 74세의 나이로 포천 집에서 눈을 감았다.

이 책을 통해 ‘협’(俠)이라는 한 글자에 자신의 삶을 걸었던 조선시대 한 무사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그의 생애를 뒷받침해 줄 초상과 글씨, 백동수가 보았던 책, 그가 사용했던 무기, 그가 무예를 연습했다는 장소를 그린 그림, 지난해 6월 수원 화성에서 열린 ‘정조시대 전통무예전’ 화보까지 풍부한 자료들이 첨부돼 있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더불어 ‘무예도보통지’의 편찬과정과 북학파 탄생의 배경, 초어정에서 형제의 의리를 맺었던 박지원과 이덕무의 생애, 그 밖에 김홍도를 포함한 수많은 역사 인물들까지 접하게 됨은 예상을 뛰어넘는 즐거움이다. 잘 쓰여진 한 인물의 전기가 잊혀진 역사의 한 자락을 들춘 셈이다.

조선의 협객 백동수/ 김영호 지음/ 푸른역사 펴냄/ 348쪽/ 1만5000원

< 김현미 주간동아 기자 > khmzip@donga.com

◇ Tips

협객 : 사마천은 ‘사기’에서 협객에 대해 “그들은 한 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행동은 늘 과감하고, 일단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 만다. 나아가 신명을 바쳐 사람의 의난을 구하려 하고, 무슨 일이든 목숨을 바쳐 하며, 그 능력을 자랑하거나 타인에게 신세 지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고, 박지원은 “힘으로 남을 구하는 것을 협(俠)이라 하고, 재물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고(顧)라 한다. 고일 경우 명사(名士)가 되고, 협일 경우 전(傳)으로 남는다. 협과 고를 겸하는 것을 의(義)라 한다”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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