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최규선은 판도라 상자인가

  • 입력 2002년 5월 7일 18시 36분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崔圭善)씨가 수감 전에 녹음해 두었다는 테이프는 놀라운 사실로 가득 차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최씨는 검찰 수사에 앞서 홍걸(弘傑)씨를 옭아맨 약점을 무기로 권력 핵심부와 거래를 시도했고 녹음 테이프도 그러한 목적에서 남겨 둔 것으로 판단된다. 최씨의 평소 언행이 심하게 튀는 데다 검찰 수사를 앞둔 심리적 압박 상태에서 행해진 녹음 내용이라 다소 과장됐을 개연성이 있다.

녹음 테이프에서 나오듯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당선자 주위에서 그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퍼져 있었던 것 같지만 완전히 황당무계한 인물만도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 국제 금융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 가수 마이클 잭슨의 방한을 성사시키는 실력을 보여 주었고 김 대통령 부부, 홍걸씨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더라도 녹음 테이프의 모든 내용을 과대 망상의 헛소리라고 치부해 버리기는 어렵다.

녹음 내용 중에서 청와대 국가정보원 직원 등과 밀항 대책을 논의한 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중대한 범죄에 해당한다. 홍걸씨에게 100만원권 수표 300장(3억원)을 주었다는 진술이나 김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최씨에게 대우와 현대를 도와 주라고 했다는 주장도 예사로이 넘길 수 없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압력을 받고 미국으로 출국했던 최씨가 권노갑(權魯甲)씨 비서로 들어와 홍걸씨에게 접근하게 된 경위도 종잡기 어렵다. 버림받은 최씨를 거두어 핵폭탄으로 키운 권씨는 최씨를 견제하던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2차장의 폭로로 수감됐다. 구성이 복잡한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난해하다.

건강하지 못한 인물이 대통령 일가와 권력기관 주변에서 종횡무진 설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현 정권이 지닌 한계이다. 청와대와 권력기관에서 쉬쉬하며 알려질까 겁내던 판도라의 상자가 마침내 열렸다. 판도라의 녹음 테이프에서 진실과 과장을 가려내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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