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대만 퍼스트 레이디

  • 입력 2002년 5월 7일 18시 36분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의 부인 우수전(吳淑珍·50) 여사가 한국과 대만간 자그마한 갈등의 불씨가 됐다. 갈등의 출발점은 7일부터 한국을 방문하려던 우 여사의 계획. 우여곡절 끝에 방한이 무산되자 양국 정부와 언론에서 조금씩 다른 반응과 해석이 나오고 있다. ‘퍼스트 레이디’가 국가간 현안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이라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중국이라는 존재를 의식해야 하는 미묘한 상황에서 한국과 대만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여서 외교적으로도 단순하지 않다. 대만 언론과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에 대한 섭섭함을 표시하고 있어 후유증도 우려된다.

▷대만의 퍼스트 레이디 우 여사는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85년 타이난(臺南)현 현장 선거에 출마한 남편을 돕다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기 때문이다.중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난 천 총통과 우 여사의 젊은 시절 사랑 이야기도 아름답지만 아내를 화장실에 데려다주기 위해 매일 밤 두 번씩 잠에서 깨는 천 총통의 지극한 아내사랑도 감동적이다. 부모가 가난한 법대생과의 결혼을 반대하자 집을 뛰쳐나간 부잣집 딸, 남편이 명예훼손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자 대신 입법의원에 출마해 ‘의정활동 1위’의 성적을 일궈낸 아내…. 두 사람의 인생은 소설만큼 극적이다.

▷우 여사의 외국방문은 흔한 행사가 아니다. 20일로 천 총통이 취임한 지 만 2년이 되지만 지금까지 단 두 차례 외국에 나갔을 뿐이다. 대만이 발주한 선박 진수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일본과 남편을 대신해 ‘2001 자유상’을 받기 위해 찾은 프랑스가 전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이 제약요인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이유가 더 크다.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의 위세에 눌려 세계 각국이 천 총통의 입국은 물론 우 여사의 입국까지 꺼리기 때문이다.

▷대만측 인사는 우 여사 방한의 비정치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한국의 장애인협회와 손잡고 행사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측은 정치적 외교적 잣대를 들이댄 것 같다. 외교부 관계자는 “대만 퍼스트 레이디의 방한은 누가 봐도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렇지만 한국이 우 여사의 방한을 거부한 것은 지나치게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좀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는 없을까.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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