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읽는책]'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 입력 2002년 5월 3일 17시 22분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8년 전쯤 일이다. 약속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시내 서점에 들어가서 어슬렁 거리다가 지금은 튀는 제목의 책이 많지만, 당시로서는 제목이 상당히 거칠어 보이는 책 하나가 내 눈을 붙잡았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현암사·1993)

순간 내가 엄청 야단을 맞고 있다는 생각에 책을 집어 들었다. 책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굵은 글씨에 분량도 보통 책의 삼분의 일 밖에 안 되어서 망설임없이 계산을 끝냈다.

‘농촌은 얄궂은 돌개 바람이 불어서 젊은이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고 있으니 무슨 경이라도 외어 잠재울 수는 없는 지?’ ‘산수유를 퇴비만 주어 키우다가 뒷거름을 듬뚝 주었더니 산수유 열매가 땅에 지천으로 깔렸다.’ ‘삶이란 그 무엇(일)엔가에 그 누구(사람)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염통에 쉬 쓰는(구더기 생기는)줄 모르고 손톱에 가시 든 줄은 안다.’

화려한 집에서, 좋은 차 타고,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으며 우리 가족끼리 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책을 덮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하면서도 거부하거나 변명할 명분이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남이 있으매 나의 존재가 의미있고, 자연이 있어서 내가 여기에 존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나 혼자 잘 나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오만과 교만이 한 농사꾼 할아버지의 소박한 주장 앞에서 어이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말은 배 터지게 먹고 돈 주면서 살 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자동차가 없으면 꼼짝 할 수 없다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공해로 인하여 멀지 않아 지구 전체가 ‘암’ 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하긴, 돈 좀 있다고 마구마구 써대는 졸부들을 보면서 배를 움켜 쥐고 부러워 하고, 그들을 닮지 못해 안달하며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 인간은 좋지 못한 일에 적응이 더 잘 되도록 창조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희망은 인간을 존재케 하는 에너지이며 누구나 염원하는 행복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 행복을 위하여 행여나 하는 마음에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얼마 전부터 작은 줄기 하나를 붙잡고 불안한 걸음마를 시작하였다.

이 풍진세상에서 ‘아줌마 운동’을 한다는 것이 결코 녹녹치만은 않지만 안되는 일 버리고, 되는 일만 하기로 마음 먹으니 걱정 끝 용기 백배다.

전우익 선생님은 책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사람은 착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기를 따 먹으면 사람에게 무서운 독을 안기듯이.’

이 말씀은 이 사회는 모가 난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충고의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줌마 운동을 해 가는데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일을 하면서 용기와 타협 중 선택을 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깡패 아줌마’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도 갖게 되었다.

인간이기에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구경꾼이 되고 별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세상에서 ‘아.나.기’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활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뉴욕의 유엔본부 앞 광장에서 별난 한국 아줌마들이 앞장서서 전 세계 인류가 덜 먹고, 덜 쓰고 그래서 덜 사기를 생활화하여 생활주준을 낮추기 위한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김용숙(아.나.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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