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교수

  • 입력 2002년 4월 5일 17시 38분


김형국 교수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다시 그린 임옥상 화백의 '세한도'앞에 서 있다.
김형국 교수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다시 그린 임옥상 화백의 '세한도'앞에 서 있다.
‘나는 매양 푼수없이 소심한 사람이다. 낯을 많이 가린다. 사람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걸레스님 중광은 아무 스스럼 없이 만날 수 있는 몇 사람 가운데 한 분이다. 스님은 세상에 가득한 속기나 때를 훔쳐 내는 걸레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보통 사람도 일상의 규범에서 벗어나고 싶은 광기를 갖고 있다. 최근에 내가 체험하는 바로 청중들로 하여금 숨을 죽이게 하는 바이올린, 피아노 등 명연주가의 음악회에 가면, 어느 한 순간 고함을 지르고 싶다는 충동이 마음 한구석에 솟구친다. 그럴 때면 그 ‘충동적 나’를 통제하려고 체면으로 무장된 ‘일상의 내’가 안간힘 쓰는 마음 속의 파문을 느끼는 데, 그 충동이 바로 나에게 내재된 광기의 모습이다.’

중광스님을 묘사한 이 겸허하고 솔직한 토로의 주인공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金炯國·60) 교수다. 이 글은 중광스님이 2년 전 가나아트센터에서 ‘괜히 왔다 간다’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할 때 도록에 쓴 발문이다.

김 교수는 이미 천재화가 장욱진(張旭鎭·1917∼1990)과 18년간 교류하면서 ‘그 사람 장욱진’(1993·김영사), ‘장욱진, 모더니스트 민화장(民畵匠)’(1997·열화당)등 2권의 저서를 통해 화단에서는 장욱진 전문가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그림에 관해 전문적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김 교수는 생전에 사람 가리기로 유명하고 마음이 없으면 절대 말을 건네지 않았다는 장욱진 선생과의 ‘체험적 사랑’을 글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김 교수가, 생전에 장화백과 교분이 두터웠던 중광스님과도 교류가 이뤄졌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

경남 마산출신으로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1975년이래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동안 환경대학원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이번에 문화와 관련한 책을 펴냈다.

앞서 나열한 김교수의 ‘건조한’ 이력 뒤에 장화백과 중광스님과의 교류가 숨어 있었 듯, 김 교수가 펴낸 신간 ‘고장의 문화판촉-세계화 시대에 지방이 살 길’(학고재)이라는 건조한(?) 제목 뒤에는 김 교수의 평생 화두였던 ‘문화’에 대한 모든 것이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문화가 중요하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문화 수준이 높아지지 않고는 경제성장은 더 이상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작 그 문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평소 인간의 모든 삶을 ‘문화’라는 키워드로 풀어 내 ‘문화주의자’로 자처해 온 김 교수는 이번 책에서 ‘문화는 아름다움이다’는 언명속에 깊이있는 문화론을 펼쳐내고 있다.

“문화를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바람직한 가치의 실현’이라고 전제할 때 그 가치는 한마디로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은 착함 또는 어짊과도 같은 말이죠. 외양만 지칭하는 것도 아니고 내면을 가리킬 때도 똑같습니다. ‘아름다움’은 문화의 상징어라고 할 수 있지요.”

책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대목은 ‘제8장-문화라는 것’이다. 문화〓아름다움이라고 할 때 그 아름다움을 대략 아홉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진실, 둘째 완벽, 셋째 자연, 넷째 전통, 다섯째 이설(異說), 여섯째 신명, 일곱째 예절, 여덟째 손맛, 아홉째 작은 것 등이다. 대부분 고개가 끄덕여 지지만 다섯째 ‘이설’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홉가지 중에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정설(定說)과는 반대인, 주류가 아닌 이야기, ‘남과 달리’ ‘상식과 달리’ ‘기존(旣存)과 달리’ ‘튀려는’ 용기있는 행동이지요. 문화란 상대주의이며 절대 가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개성이고 차별성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길로 달려갈 때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바로 문화지요.”

“통념에 의문을 갖지 않고는 다른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역설과 이설에 너그럽지 않고선, 이들이 만드는 차이에 익숙하지 않고선 문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설은 아름다운 것이지요.”

이런 논지속에서 김 교수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세계화 시대라고 해서 모두들 밖으로 나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세계 사람들을 어떻게 안으로 불러들일까 하는 것도 똑같은 고민입니다. 그 역할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이뤄져야 하고요. 지방자치제 이후 1년에 200여 축제가 펼쳐 지는데 아직까지 진정한 문화적 사고로 기획된 행사들이 많지 않아요. 베끼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똑같이 베끼지 말고 좀 다르게 베껴야 경쟁력이 생기지요.”

이 책은 문화이론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려는 독자들에게도 도움될 성 싶지만 지역에서 문화 실무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김 교수는 “그동안 ‘문화주의자’라는 자처가 본업과는 무관한 한량놀음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을까 자책했는데 책을 통해 문화를 지역발전에 접목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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