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 잔치는 시작됐다…구세대는 밀어주고 386은 끌어주고

  • 입력 2002년 4월 1일 18시 45분


‘386 세대’의 선두 주자인 80년대 초반 학번들이 이제 마흔줄에 접어들면서 ‘386’시절과 다른 ‘486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2000년, 2001년부터 80학번들이 서서히 ‘486’으로 바뀐 데 이어 올해는 81학번들도 본격적으로 ‘486’ 대열에 합류, 이른바 ‘386 세대의 성격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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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486이라는 차별화된 타이틀이 새롭다”며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의 6·29선언 이후인 ‘386 후기 버전’과는 또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보다 ‘사회’가 우선이었던 시기를 산 이들은 각자의 유형에 따라 연륜과 관록을 더해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고 있다.

1984년, 박태웅사장(40·서울대 81학번)은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한 학기 정학처분을 받았다. 이듬해, 졸업을 앞두고 취직을 걱정할 때 고향집에서 “빨리 내려오라”는 전보가 왔다. 멀쩡하던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다. 빚쟁이들이 집을 에워싸고 있었고 그는 군대에 갔다.

박사장은 병역을 마친 뒤 10여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가 사업을 위해 그만 뒀다. 99년 인터넷포털사이트 ‘인티즌’ 설립에 참여했고 이후 와우북, 맥스무비 등 업계에서 정상을 다투는 인터넷비즈니스를 일궜다. 현재는 안철수연구소 계열의 보안업체인 ‘자무스’를 이끌고 있다. 사업 초기여서 고생하고 있으나 매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삶에 익숙한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태생적 맨손’인 그는 나이 마흔에 ‘안정’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10여년 뒤 ‘586’이 되면 명분있는 일을 꼭 할 생각이다. 그는 “돈을 들고, 폼 나게 시민운동을 벌이고 싶다”고 말한다.

다국적컨설팅기업 A사의 김모부장(41·서울대 80학번). 최루탄 때문에 눈물번진 여학생의 마스카라가 ‘광대’같아 보인 그는 87년 졸업 직후 미국 B사에 입사 지원을 했다. 기대도 안했는데 “미국에 다녀오기 전 얼굴이나 한 번 보려고 불렀다”는 지사장의 짐을 들고 공항까지 쫓아가 고용계약서에 사인했다. 며칠 뒤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부장은 미국에서 자기계발에 몰두했다. 마케팅관련 대학강좌는 빼지 않고 쫓아다녔고 사설 마케팅 학원까지 다녔다. 대학시절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 됐던 것.

대학시절 그는 배운 게 없어 진로 때문에 고뇌했다. 지금 그는 나이 마흔이라는 핸디캡이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고민한다.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국적 기업인 대부분 고객사들은 냉정하게 나를 버린다”는 그는 이 분야에서 아직 앞서가고 있다.

오비맥주의 황삼석 차장(41·명지대 80학번)은 시위를 한 적이 없다. ‘자리를 잡은 다음에 더 크게 꿈을 펼치자’며 대학 생활을 마치고 86년 현직장에 입사했다.

황 차장은 조만간 전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노조 설립에 큰 역할을 했던 그는 ‘스페셜리스트’는 아니다. 그는 “386에게서 배운 것은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정신”이라며 “대학교때 나를 만들었고 회사에서 노조를 만들었듯, 이제는 나를 다시 만들 차례”이라고 말했다.

◆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아니면…

광주민주화항쟁(1980년)이후 가장 격렬한 대학 시절을 보낸 뒤 1990년대 중후반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발전을 주도했던 ‘386’ 초반 세대들. 이들은 이제 486으로 타이틀을 바꿔 달면서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부르며 지난 10년을 인정할지, 영화 ‘박하사탕’의 김영호(설경구)처럼 “나 돌아가고 싶어”라고 외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박태웅 사장 등은 “지나온 10년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살아갈 10년 뒤에 받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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