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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1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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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까지는 뛰어난 마케팅이 큰 역할을 했다. 1919년 코카콜라의 제조기술과 판매권을 넘겨받은 우드러프가(家)는 독특한 프랜차이즈 생산 유통방식으로 세계를 ‘중독’시켜 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이 있는 모든 전장에 한 병에 5센트를 받고 코카콜라를 공급했다. 이렇게 해서 전쟁 동안 소비된 코카콜라만 50억병.
그리고 현재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매일 10억잔 이상 소비되고 있다. 초기 1달러에 불과했던 코카콜라의 시장 가치는 무려 1514억달러. 브랜드 가치만 725억달러(2000년 7월)에 달한다.
한국 상품은 어떨까. 역사와 규모를 견줄 수는 없지만 막강한 시장 장악력을 갖춘 장수상품이 한국에도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 역시 차별화된 마케팅. 품질 향상에만 집착하지 않고 이미지와 브랜드 홍보에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게 세대를 뛰어넘는 인기 비결이 됐다.
▽감성을 자극하라〓40여년 동안 초베스트셀러를 놓치지 않고 있는 ‘박카스’. 1961년 발매된 지 3년 만에 자양강장제 부문에서 판매고 1위를 차지했고 1967년 제조업체인 동아제약을 제약업계 1위로 만든 효자상품이다. 2001년 말까지 판매된 박카스는 130억여병. 병(길이 12㎝)을 늘어놓으면 지구를 39바퀴 돌고도 남는다.
박카스 성공의 밑바탕에는 뛰어난 광고가 있었다. 동아제약은 상품 판매 초기 매출의 7%를 광고에 쏟아부었고 지금도 5%(100억원)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요즘 신세대 소비자에는 “지킬 것은 지킨다”는 광고카피로,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는 ‘젊음과 활력(活力)’ ‘활력을 마시자!’ ‘승리는 체력에서!’라는 광고카피로 기억되며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고 있다.
2000년 한국 영화 흥행성적 1위 작품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관객들이 꼽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 인민군 병사 송강호가 귀순을 은근히 권유하던 남한 병사 이병헌에게 불같이 화를 낸 뒤 “우리 북조선에서는 언제 이렇게 맛난 과자를 만드나”며 동양제과의 ‘초코파이’를 한입에 넣는다.
70년대 초반 선보인 뒤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지난해 국내 건과류 파이부문 시장점유율 65%를 차지했던 초코파이는 이제 체제의 차이를 담아내는 코드로까지 인정될 정도. 단순히 맛있는 어린이 간식으로 인식됐다면 영화 속에서 이같은 변용은 불가능했다. ‘초코파이〓정(情)’이라는 광고를 통해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먹는 간식으로 바꾸면서 시장을 확대해 나간 결과였다.
▽발상의 전환〓진로의 소주는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는 주류시장의 영원한 명주다. 프리미엄급 소주를 포함,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지만 요즘도 애주가들은 “소주 한 병 마시자”보다는 “두꺼비 한 마리 잡자”고 말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진로는 하루평균 300만병(360㎖ 기준), 연간 11억병이 생산된다. 단일 주류로는 세계 최대 생산량이다.
진로가 초기부터 이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54년 두꺼비 상표로 서울에서 제품을 첫 출시했을 당시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무엇보다 유통업체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크고 작은 양조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술이 차고 넘쳤기 때문.
진로는 이를 뚫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찬 이슬을 먹고 사는 장생 동물인 ‘두꺼비’를 상징물로 정했다. 여기에 ‘병 마개 속의 두꺼비를 찾으세요’ 등과 같은 이벤트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여 갔고 1위 자리를 빼앗았다.
롯데제과의 롯데껌. 한때 작가의 꿈을 키웠다는 신격호 회장이 문학적 감수성을 유감없이 발휘, 다양한 광고 카피로 성공을 이뤘다. 48년 처음 선보였을 당시 껌을 ‘입 속의 연인’이라고 묘사하면서 선풍적인 관심과 인기를 모았던 것. 이후 CM송과 당대 청소년 소비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신세대 스타를 앞세운 광고로 껌시장을 점령했다. 작년에 팔린 롯데껌은 1800억원어치. 껌시장의 72%를 차지한다.
▽선택과 집중〓‘야쿠르트’는 한국야쿠르트가 71년 선보인 국내 요구르트 1호. 올 2월까지 345억병이 팔렸다.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냈을 정도. 한국야쿠르트는 손가락 크기의 야쿠르트 생산을 멈추지 않고 있다. 기능성 요구르트 판매를 지원할 ‘원조’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
LG생활건강의 페리오치약도 21년째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치약시장 점유율은 20%. 그간 숱하게 쏟아진 치약을 제치고 부동의 1위를 고수하는 비결은 ‘온 가족의 치약’이라는 전략을 지켜왔기 때문. 누구나 부담없이 쓸 수 있는 컨셉트가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상의 미원도 마찬가지. 국산 발효조미료 1호로 56년 출시됐다. 한 때 제일제당과의 피말리는 전쟁을 겪으며 ‘미원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미풍을 내세웠던 제일제당은 미원을 꺾지 못하자 종합조미료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한민희 한국마케팅학회장 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장수상품의 광고를 보면 시대적인 상황에 맞는 표현을 취하기는 했지만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소비자를 일종의 팬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팬은 해당 상품의 웬만한 결함 정도는 눈감아주면서 소비하는 행태를 보인다는 것.
그는 또 박카스, 진로, 초코파이는 브랜드 이름이 곧 해당상품군을 의미하는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며 상당기간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