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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31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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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이던 2000년 12월 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DJ의 총재직 사퇴 결단’을 얘기했다가 여권 내에서 물의가 빚어지자 이 내용을 빼줄 것을 요구했고 거절당하자 내뱉은 말이다.
‘흠집내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실제 노 후보는 아직도 많은 정치부 기자에게 열정과 진솔함의 이미지와 함께 ‘튀는 언행’으로 기억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가 구사하는 말에는 과격하다싶은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심심찮게 돌출한다. 최근 그의 언론관을 문제삼을 때 단골로 등장하는 ‘언론과의 전쟁’이란 표현도 한 예다.
지역감정의 벽을 돌파한다는 명분으로 ‘사지(死地)’와 다름없던 부산지역선거에 여러 차례 자원 출진했던 그는 한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한 감정도 가졌다는 게 주변사람들의 얘기다.
물론 한때의 열정이나 분위기 때문에 종종 너무 나갔다싶은 언행을 하는 경우는 우리 서민들에게 비일비재하다. 그것을 이해해주는 것도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하지만 그의 언행과 노선이 새삼 검증의 도마에 오르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한 대통령 예비주자이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에게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준비된 대통령’으로 불렸던 민주당 앨 고어 후보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인터넷 창출을 내가 주도했다”고 과장 발언을 했다가 대선 내내 시달렸다. 실제 상원의원 시절 ‘정보슈퍼 하이웨이’ 창설을 제안하기도 했던 그로서는 자신의 식견에 자부심을 가질 만도 했다. 그러나 이 과장 발언 때문에 부정직한 이미지가 덧씌워졌고 대선 패배 후 언론들도 이 발언을 그의 중요 패착 중 하나로 꼽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노 후보의 발언들은 그가 엄연히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란 공인의 신분으로 한 말이다. 그것도 충분히 노선시비를 불러일으킬 만큼 인화성 있는 발언들이다. 그 언행에 대해 따져 묻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일이 단순한 인기투표가 아니라 국민의 운명과 직결돼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아들 병역문제나 ‘빌라타운’ 문제, 며느리의 ‘원정 출산’ 의혹, 나아가 그의 포용력 부족 등 품성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가 정치지도자로서 검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불과 10여년 전에 공인으로서 했던 발언에 대해 노 후보측이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시대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나라당 방식’이니 ‘수구언론’ 운운하며 대응하는 방식은 노 후보 측이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문마저 안겨준다.
누가 이런 문제를 제기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추었음을 입증하는 것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노 후보 자신의 몫이요, 과제다.
이동관 정치부 차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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