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운명의 날 시계'

  • 입력 2002년 3월 1일 18시 32분


피사의 사탑을 짓기까지는 거의 200년이 걸렸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였던 피사가 팔레르모해전에서 사라센 함대에 거둔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공사에 들어간 게 1174년. 3층까지 올렸을 때 지반 침하로 탑이 기울면서 중단됐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된 게 14세기 후반이다. 삐딱하게 기운 이 탑이 용케도 쓰러지지 않은 이유는 현대과학을 총동원해도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기에 10년 전 이탈리아 과학자인 조반니 가리볼리는 “피사의 사탑은 신의 뜻으로 기울고 있다”고 했다. 지구 종말에 대한 암시라는 주장일 게다.

▷사람들은 늘 ‘최후의 날’에 대한 막연한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1992년의 휴거 소동,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세계를 휩쓸었던 종말론만 봐도 그렇다. 굳이 난해한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어쩌면 지구의 종말은 이미 예고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수명의 절반을 넘긴 태양이 갈수록 뜨거워져 지구 온도가 섭씨 60도까지 상승하면 물이 아예 사라진다는 이론도 있다. 다만 앞으로 5억년 후의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세계 천문학계는 1999AN10으로 명명된 ‘소행성 비상’에 걸려 있다. 지름이 수㎞나 되는 이 별이 2027년 인공위성 궤도보다 안쪽까지 지구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 별이 지구와 충돌한다면 모든 게 끝이다.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는 인류를 공멸에서 구하려는 장치다. 1947년 미국 핵과학자협회가 만든 이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면 핵전쟁으로 인류가 파멸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과 소련이 차례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 1953년엔 자정 2분전까지 다가서 세계를 떨게 했다. 4년 동안 11시51분에 맞춰져있던 분침이 엊그제 11시53분으로 바뀌었다. 9·11테러 등이 핵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구촌의 몇몇 골칫거리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는 날엔 분침이 순식간에 자정 1분전까지 돌아갈 판이다.

▷지구 종말의 원인이 어디 핵전쟁뿐이겠는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륙해에서 졸지에 사막으로 변한 아랄해는 이미 ‘물 없는 인류’를 경고하고 있다. 하루에 100여종씩 멸종하는 생태계, 이름도 생소한 엘니뇨 라니냐 등 환경재앙…. 하나같이 종말을 암시하는 증거가 아닌가. ‘문명이 문명을 파괴한다’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경고는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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