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농구맨 3인의 시즌나기

  • 입력 2002년 2월 18일 18시 03분


이상민
《팬에게 감동의 승부를 보여주기 위해 ‘공인’이 된 프로농구 감독과 선수, 프런트. 이들에겐 매일 매일 강행군만이 있을 뿐이다. 올스타 최고득표선수인 KCC 이상민, 팀을 1위로 올려놓은 동양 김진 감독, 관중 1위를 자랑하는 LG의 한상욱 팀장. 프로농구판에서 ‘최고’를 자부하는 이들은 가정에선 ‘빵점’임을 자인한다. 이들의 막바지 시즌나기를 들여다본다. 》

▼KCC 이상민의 24시간

프로농구선수들은 시즌 중 휴일이 없다. 매주 토, 일요일 연이어 경기를 갖는 등 1주일에 3경기는 필수다.

국내 프로농구 최고 인기스타 이상민(30·KCC 이지스)도 예외가 아니다. 설날 차례도 못지낸 것은 물론 밸런타인데이에는 아내로부터 “초콜릿 가져가”라는 투정섞인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개인생활보다는 ‘공인’으로 사는 ‘대한민국 대표 농구스타’ 이상민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15일 전남 여수에서 24시간 밀착취재했다.

▼오전 7시▼

‘따르릉, 따르릉….’ 심술궂게 울려대는 휴대전화 소리에 눈을 반쯤 뜬 채 전화기를 귓가로 가져갔다. “안녕하세요, 네….” 그의 기상시간은 일정하다. 아침 마감시간이 급한 스포츠전문지 기자들이 항상 이 시간부터 전화를 걸어 요것조것 꼬치꼬치 물어보기 때문. 물론 이 시간에 아내(이정은씨)에게 전화하는 것도 필수다.

▼오전 8시 30분▼

이른바 ‘밤새 안녕하신가?’를 신고하는 시간이다. 아침식사시간. 메뉴는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 등 간단하지만 이 시간에 빠지면 그건 ‘사고’다. 밤새 술 마셨는지 등 딴짓을 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시간. 박종천 유도훈 코치의 눈길이 바빠지는 탓이기도 하다. 이상민은 술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시즌 중엔 입에 안댄다.

▼오전 11시 30분▼

점심시간. 아침을 먹은 지 두시간 밖에 지나지 않지만 주전을 제외한 선수들이 10시부터 한시간동안 개인훈련을 마친 탓에 이 때 점심을 먹는다. 한식이 기본. 한가지 특이한 것은 메뉴에 상관없이 오렌지주스가 나온다는 것.

이후 달콤한 휴식시간이다. 동료들과 잡담도 나누고 인근 당구장에서 내기하기도 한다. 하루 반갑 피우는 담배를 한 대 무는 시간도 바로 이때. 전화가 또 온다. 물론 아내에게서 온 것. 이상민은 지난달 29일 득남을 했다. 그래서 제왕절개수술을 받은 아내가 힘들까봐 20개월된 큰딸 유진이는 수원 처가에 맡겨놨다. 딸애에게 전화 좀 해주라는 게 아내의 주문. 이상민은 어김없이 전화를 넣는다. 둘째 준희가 태어날때는 마침 올스타브레이크기간이라 ‘운좋게’ 분만실에 들어갔단다.

▼오후 2시 30분▼

부리나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호텔방을 뛰어나간다. 연습을 위한 집합시간. 신선우 감독은 시간 어기는 것을 싫어해 단 1분이라도 늦으면 스타고 뭐고 그냥 두고 출발한다. 그의 자리는 맨앞, 대학선배 정재근 바로 옆자리다.

여수진남체육관에 도착 후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슈팅, 전술훈련 등 정말 땀이 비오듯 훈련을 한다. 짧지만 강도높게 하는 타입. ‘색시’라는 별명과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장난을 치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팀 전술 훈련에선 누구보다 열심.

▼오후 6시30분▼

여수가 어디인가, 생선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니 회 한접시는 기본. 오랜만에 호텔을 떠나 이곳이 고향인 박종천 코치 친구가 하는 횟집에서 감성돔 맛을 본다. 한잔 생각이 간절하지만 경기 전날은 금물. 애꿎은 오렌지주스만 벌컥벌컥 들이켠다.

▼밤 8시▼

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PC로 e메일을 체크한다. 팬클럽에 들러 팬이 올린 글을 읽는 것도 큰 즐거움. 요즘 푹 빠져있는 것은 온라인 바둑. 선배 정재근으로부터 한수 지도받고 있지만 16급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날도 대국에서 무려 30점을 졌다. “재근이형이 옆에 있었으면 반대로 30점 이겼을 텐데”라며 아쉬운 표정이다.

이제 내일 경기에 대비한 비디오 관찰시간. 상대팀 선수의 움직임을 익혀 길목을 차단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의 눈길은 상대팀 코리아텐더의 포인트가드 정락영에게 쏠린다. 무척 빠른 선수라 부담이 되기 때문. 30분 가까이 진행된 이 시간은 침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밤 11시▼

동료들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내일 경기 때문에 일찍 자리에 든다. 베개를 죽 깔아놓고 엎드려 잔다. 물론 유진엄마에게 ‘굿나잇’인사를 빼먹었다간 큰일이란다.

여수〓전 창기자 jeon@donga.com

▼동양 김진감독 농구장에선 1등 집에서는 빵점

‘일등 감독, 빵점 아빠’

동양-삼성전이 열린 16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김진 감독(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부인 사성빈씨, 아들 윤, 딸 유진이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양 오리온스의 김진 감독(42)은 요즘 달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며칠전 아들 성윤이(7)의 유치원 졸업식에도 못 가본데 이어 다음달 2일 초등학교 입학식 때도 경기 일정과 겹쳐 참석할 수 없게 된 것. 이뿐만 아니다. 2남1녀중 장남인 김 감독은 “매년 설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말을 잇지 못한다.

김 감독 역시 6개월 가까운 시즌 동안 거의 집에 들를 수 없는 처지. 한달에 두세번 정도 잠시 가족과 만날 뿐이다. 어쩌다 애들이 아프다는 말이라도 전화로 들으면 가슴을 졸이며 발만 동동 구른다. 흔한 가족 사진도 몇 장 없어 아들 유치원에서 한 장 가져오라고 했을 때는 애를 먹기도 했단다. 가족 여행은 3년 전 한번 다녀온게 전부.

지난 시즌 팀이 최하위를 달릴 때는 연일 합숙을 하느라 발길이 더욱 뜸했다. “걱정할 까봐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숨기고 나중에 말하는 편”이라는 것이 부인 사성빈씨(35)의 얘기.

올 시즌 팀이 단독선두를 달리면서는 그나마 사정이 나아졌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와 두 아이의 목소리도 환해진 것.

김 감독은 “내 대신 모든 일을 떠맡아 하는 집사람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그래도 잘 이해해주고 언제나 응원을 해줘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LG한상욱 우승지원팀장…팀성적 중위권 가족들도 울상

프로농구단 프런트 직원의 표정을 프로농구단 프런트 직원의 표정을 보면 그 팀의 성적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승패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LG 세이커스 농구단 한상욱 우승지원팀장(38·사진). 그는 “자기 희생과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시즌 내내 집을 멀리 떠나있어야 하고 주말과 휴일에도 늘 경기가 있다보니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 또 정규시즌 54경기를 치르는 동안 승부에 집착하다보면 속만 까맣게 탄다.

한 팀장은 91년 금성사(LG전자 전신)에 일반직원으로 입사한 뒤 94년 사내 모집을 통해 1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농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 농구 마니아였던 까닭에 선뜻 지원하게 됐다는 것.

아내와 1남1녀를 둔 한 팀장의 집은 경기 성남시 분당으로 팀 연고지인 경남 창원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시즌 동안에는 집안일 챙기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그나마 지난 시즌까지는 정규시즌 준우승도 2차례하고 홈 관중 동원에서도 10개팀 중 늘 1위여서 가족 앞에서 체면이 섰다. 하지만 올 시즌 팀 성적이 중위권을 맴돌면서 가족들도 애가 타는 것 같아 답답할 때가 많다.

한 팀장은 “쉬는 날이 일정치 않고 아이들을 잘 챙기지 못해 언제나 미안함이 앞선다”며 “가족들의 불만이 없을 수 없지만 아내가 직업 특성을 잘 헤아려 주니 고맙다”고 말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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