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손병두/뉴욕 세계경제포럼을 보고

  • 입력 2002년 2월 5일 18시 09분


손병두 / 전경련 부회장
손병두 / 전경련 부회장
세계경제 침체라는 난제에 봉착한 ‘세계화’의 끝은 어디일까.

30여명의 국가 수반을 비롯해 3000여명의 저명인사들이 참석한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에는 개최지를 미국 뉴욕으로 옮겨 열렸다. 스위스의 다보스처럼 흰 눈과 스키를 즐길 수 없다는 아쉬움 속에서, 그리고 4000여명의 경찰이 펼치는 삼엄한 경계와 세계화 반대 데모의 소음 속에서 치러진 이번 회의의 분위기는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우선 지난해 9·11테러사태가 세계안보 및 경제환경에 미친 여파가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9·11테러는 세계경제 중심지인 뉴욕의 상징성에 일격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화, 즉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환경-종교계 인사 초청▼

이는 그동안 WEF가 주창해온 세계화의 원칙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지금 상황에서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시사하는 것이다. 주최측은 세계경제의 중심지이면서 테러 공격을 당한 뉴욕에서 이번 포럼을 개최함으로써 세계경제의 원동력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을 과시했다고 할 수 있다.

참석자의 구성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종교 지도자와 사회 운동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전현직 국가수반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와 재계 및 학계인사 등이 많이 참석했지만 테러사태에 따른 문명충돌의 우려 속에서 다양한 종교지도자와 주요지역 분쟁전문가, 환경보호자들이 상당수 초청됐다.

개최장소와 참석자가 이렇다 보니 회의의 화두(키워드)는 글로벌 안정, 평화, 사랑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논의 내용에 있어서도 경제문제 일변도에서 벗어났다. 세계화의 슬로건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정보기술(IT)산업 등 특정 산업에 대한 편중된 시각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격변기의 리더십:함께 하는 미래를 위한 비전’이란 주제를 내건 이번 포럼의 의제도 △안보의 확립 △빈곤의 퇴치와 형평성의 확립 △가치의 공유 및 이견의 조화 △경제지도자의 역할 재정립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용이 많았다.

그동안 ‘경제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논리에 따라 모든 나라가 ‘성장과 발전’을 중시했지만 이제는 경제를 지탱해주는 글로벌 안전과 안보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테러사태 이후 지구 공동체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접근하려는 진지함이 돋보였다. 빈부격차 해소, 환경보호, 문화가치 존중 등이 토의 의제로 비중있게 다뤄졌다. 특히 각 나라 고유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인류가 함께 번영하기 위한 보편적인 공유가치의 모색에 열성을 보였다.

▼‘세계화’부작용 토의▼

뉴욕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인 세계경제포럼이 내년에도 비슷한 주제를 이어갈지는 두고볼 일이다. 하지만 세계의 정치지도자들과 학자, 종교인, 기업가들이 지금까지의 세계화 추세를 검토하고 부작용을 토의하는 장을 펼친 것은 이례적이다. 거칠게 저항하는 반(反) 세계화 운동을 감안할 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변화는 따지고 보면 안정된 바탕 위에서 세계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창출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뉴욕 포럼에 참석한 지도자들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뉴욕의 아픔이 치유돼 글로벌 안정이 보장되어야 하며, 세계경제의 회복과 지구촌 문제에 대한 대안 마련에 세계경제포럼이 적극 기여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내년에는 세계의 더 많은 지도자들이 더욱 포괄적인 세계화 논의를 위해 지혜의 보따리를 싸들고 ‘제2의 뉴욕’ 대신 눈덮인 스위스의 작고 평화로운 고장 다보스로 다시 몰려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손병두(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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