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群山참사, 경찰 소방당국 뭐했나

  • 입력 2002년 2월 1일 18시 27분


대낮 화재로 12명이 숨진 군산 유흥가 참사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인권 불감증’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진국임을 보여준 부끄러운 사건이다. 고달픈 삶에 허덕이며 괴로워하던 희생자들의 사연뿐이라면 제3자들은 몇 방울 눈물로 슬퍼하며 이 험한 세태를 탓하는 것으로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경찰과 소방당국의 소홀한 근무자세가 결과적으로 대형 참사를 부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희생된 여자 종업원들은 코앞에 파출소가 있는데도 불법 윤락행위를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소 2층에 있는 여러 개의 쪽방이 손님들과의 ‘2차’를 위한 것이었는데도 경찰은 단 한 번도 윤락 단속을 하지 않았다니 업소와 경찰 사이에 무슨 ‘거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업소 현관문에 밖에서 잠그면 안에서는 열 수 없는 특수한 잠금장치가 부착되고 여러 명의 남자들이 감시하는 등 종업원들이 사실상 ‘준감금 상태’에서 일하고 있었다니 경찰이 일부러 눈을 감은 것은 아닌가.

관할 소방서도 형식적 소방점검을 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종업원들은 좁은 계단으로 이어지는 2층 출입문을 열지 못해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소방당국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대낮의 작은 화재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정도로 취약한 업소의 내부환경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16개월 전 인근 윤락가에서 발생한 화재로 큰 소동이 빚어졌는데도 이 모양이니 유흥업소 주변의 당국이 ‘술’에 취해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은 결과 아닌가. 소방당국의 소홀한 점검과 경찰의 수수방관이 혹시 도망친 업주와의 결탁 때문은 아닌지 밝혀야 한다.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를 만들었다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이번 참사를 계기로 음지에서 무시되고 있는 약자들의 인권 보호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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