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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29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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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전 총리는 당시 “일본도 이제 ‘보통국가’가 되어야 한다”며 ‘과거와 관련된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지향하는 ‘보통국가’란 사실상 ‘강한 일본’을 의미한다. 이 주장의 핵심은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 권한 확대다. 그가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공식 참배한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었다.
▽현실화하는 나카소네 전 총리 구상〓당시 일반 국민은 그의 주장을 시기 상조로 받아들였고 야당도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나카소네 전 총리의 구상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오히려 평화헌법이야말로 일본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었다. 군비에 쓸 돈을 경제 발전에 투자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98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와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를 거쳐 현재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 이르기까지 최근 3년간 일본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정계에서 논의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식이다.
헌법 개정은 물론이고, 방위청의 방위성 승격, 자위대 권한 강화, 유사법제 제정,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의 참여 기준 완화, 집단자위권 확보, 교육기본법 개정, 대통령형 총리 직선제 도입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법안들이 논의중이다. 대부분 제국주의 일본의 군사 침략을 받았던 주변 국가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법안들이다.
▽엷어지는 ‘전쟁책임론’〓일본의 분위기가 급변한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은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넘으면서 ‘전쟁 책임’에 대한 죄의식이 희박해진 것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이제 더 이상 고개를 숙이기보다 위상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일반 국민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도 한몫했다. 정계에서 무엇을 논의하든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한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냉소주의가 확산됐다. 이틈을 타 정치인들은 ‘국가의 틀’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요리하고 있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불황으로 인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더 커졌다. 정치인들은 아직도 일본 국민을 세계에서 가장 얌전한 유권자로 보고 있다.
야당의 존재 가치도 엷어졌다. 1955년부터 정권을 잡아온 자민당은 94,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시절을 제외하고는 정권을 놓은 적이 없다. 현재 일본의 야당은 수권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집권 자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현재 일본에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