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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16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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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라도 뿌릴 듯한 잿빛 하늘. 덕분에 인적없는 시골역은 더욱 고적했다. 평소 같으면 학생들이라도 좌석을 채웠을 이 시간. 그러나 지난해 비둘기호에서 통일호로 열차등급이 상향되면서 요금도 인상돼 그 바람에 학생승객마저 전세통학버스에 빼앗긴 뒤인지라 객실안은 한적하기만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주변의 산과 내를 하얗게 뒤덮은 눈. 꽁꽁 얼어 붙은 철로가의 송천 물길까지 흰눈에 뒤덮여 하얗게 변했다.
오지중의 오지라는 정선땅 구절리. 그래도 사람들은 용케 알고 찾아온다. 더러는 자동차로, 더러는 이 정선선 두칸 열차로. 시름에 겨운 도시생활, 이렇게 단 하루라도 자연속으로 탈출하지 않으면 숨막혀 질식할 것 같아서다. 두메 산골 정선땅, 거기서 열차로 달리며 바라다 보는 철로변의 고즈넉한 산골 풍경에 조금은 위안도 받고.
증산역까지 정선선 철도의 총연장은 45.9㎞. 시속 40∼50㎞로 천천히 달리면 1시간 14분만에 닿는 짧은 노선이다. 그 사이에 역은 모두 다섯 개(아우라지 나전 정선 선평 별어곡). 좌석에 몸을 던지고 차창밖을 내다 보았다. 지난 12월 25일 새벽 25∼30㎝가량 내린 큰 눈, 이어 두차례 더 내린 눈으로 이상기온인 요즘도 정선선 철로변의 산과 들, 계곡은 여지껏 90%이상이 흰 눈에 덮여 눈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버스(구절리∼정선) 바람에 승객이 더 줄어든 정선선 두칸열차. 주민에게조차 대처로 나가는 열차(증산역 출발)를 갈아 탈 때나 이용하는 ‘선택과목’이 된지 오래다. 그래도 장날은 예나 지금이나 역시 장날. 정선장(2·7장)날 만큼은 물건꾸러미를 아름아름 든 촌부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여객전무 오석주씨의 말)
이용객 급감으로 정선선 열차도 한때 레일에서 사라질 뻔 했다. 그러나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게 마련. 평일 고정승객이 줄어든 대신 휴일 방문객이 늘어 ‘폐선’은 면했다.정선 아라리의 전설을 찾아 아우라지를 찾아온 여행자들이었다. 덕분에 간이역의 역무원을 철수시키고 비둘기호 열차는 퇴역시키고 통일호를 투입해 요금을 인상하는 ‘구조조정’ 선에서 마무리 된 것.
최근에는 이 두칸열차가 ‘꼬마열차’라는 예쁜 이름으로 여행자들 사이에 불리며 1시간 14분간의 두메산골 두칸 열차여행이 ‘추억 되살리기 여행’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로 타보면 두칸 꼬마열차의 매력은 더욱 빛난다. 철로변 설경 감상으로 ‘눈꽃열차’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아우라지역으로 가는 철로. 송천이 흐르는 좁은 계곡을 내내 옆에 끼고 달렸다. 꽁꽁 얼어 붙은 송천의 꺼진 얼음장 아래로는 물 줄기차게 흘렀다. 나전∼정선 철로 옆에서도 조양강은 내내 떠나 질 않았다. 깨진 얼음장이 빙산처럼 물위에 둥둥 떠있기도 했다. 강변 얼음꺼진 물가에서는 이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뜰채로 고기를 잡는 10대들이 보였다.
아우라지역. 역무원 없는 무배치 간이역은 폐가 그대로다. 댕그러니 역간판만 역사에 붙어 있다. 철길은 아우라지 강변으로 이어졌다. 하얀 눈밭으로 변한 강변에서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예서 만나 조양강으로 아우러지는 송천과 골지천에는 ‘섶다리’(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가교)가 놓여 있고 사람들은 이 다리로 물건너 여송정 정자각에 가서 아우라지 여인상을 보며 아라리의 전설을 되새긴다.
정선〓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 여행정보
◇정선선(증산↔구절리) 열차 △출발〓①증산역 06:45 14:15 18:00 ②구절리역 08:20 15:36 19:20 △요금 1700원 △문의〓증산역 033-591-1069 ◇찾아가기 △아우라지〓영동고속도로/진부IC∼33번지방도∼나전∼여량(아우라지역) △증산역〓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IC∼38번국도∼영월∼신동∼별어곡역∼증산역.
◆ 나홀로여행
자동차 여행코스(1박2일). 영동고속도로∼강릉∼정동진역(해맞이)∼헌화로(해안가 드라이브)∼어달리 해안도로(동해시)∼두타산 무릉계곡∼백복령∼첼리스트 된장마을(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아우라지∼꼬마눈꽃열차(아우라지/구절리/아우라지)∼화암동굴·약수(숙박)∼정선 소금강∼사북∼강원랜드(카지노)∼정암사∼만항재(혹은 싸리터널)∼태백산 당골광장(태백산 눈꽃축제)
◆ 함께 떠나요
정선선 꼬마열차로 정선 산골의 눈마을 풍경을 볼 수 있는 패키지. 서울 출발. ◇당일 △아라리 눈꽃열차(20일∼2월 3일)〓설피체험∼눈길트레킹∼돌과 이야기∼아우라지∼꼬마열차. 3만9000원 ◇무박2일 △환상(幻想)의 눈꽃열차(토요일)〓정동진∼천곡동굴∼된장마을∼꼬마열차. 6만3000원 △태백산 해돋이(19, 26일)〓천제단 일출∼눈축제장∼정암사∼꼬마열차. 4만3000원 ◇1박2일 △정선 오지 열차기행(21·23·25일)〓열차왕복. 꼬마열차∼아우라지(숙박)∼태백산 눈축제. 9만5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 감자옹심이

아우라지가 정선 아라리의 발상지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아우라지를 찾는 이가 최근 부쩍 늘어난 데는 유홍준교수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공이 크다.
아우라지에 갔다면 정선 아라리 한소절쯤은 읊거나 듣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 그러나여지껏 그런 문화공간은 없다. 그렇다고 발길을 돌린다면 후회할 일. 아우라지 강변 여량마을에 있는 토속식당 ‘돌과 이야기’(033-562-0739·정선군 북면 여량4리)을 찾아보자. 너른 마당 한 켠에는 전통 한옥구조로 지은 큰 방에 장석을 깔고 숯화로를 피워 두고 거기서 여주인 여주인 전옥매씨(66)가 정선아라리에 얽힌 전설과 노래를 들려주고 또 가르쳐 준다. 아들 최원희씨 역시 아우라지 지킴이. 식사가 끝나면 손님을 모시고 강변에 나가 정선 뗏군과 아우라지의 역사와 전설을 들려준다(단체 혹은 숙박객은 항상, 개별손님은 사정에 따라). 아이들을 위해서는 강변에 별도로 썰매장도 마련해 두었다(무료이용).
전씨는 유교수가 문화유산답사기를 쓰기 위해 아우라지를 취재하기 위해 찾았을 때 묵었던 옥산장 여관(책에도 나온다)의 안주인. “그때 유교수님이 아라리 한 곡조를 들려달라는 했지만 노래를 몰라 부르지 못했지요.” 그것이 못내 아쉬워 그 후 정선 아라리를 배워 지금은 식당을 찾은 여행자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 방안에는 전씨가 평생 모은 기막힌 모습의 수석들로 가득하다.
이 집의 식탁은 정선땅의 산중 진미로 가득하다. 찐 감자에 감자전을 송홧가루 막걸리를 반주삼아 맛본 뒤에는 감자옹심이(4000원)를 먹는게 이 식당의 코스. 옹심이는 팥죽의 새알보다 약간 크게 빚은 감자녹말 덩어리. 생감자를 갈아 이틀간 물에 울궈낸 뒤 앙금의 물기를 짜내서 만든 녹말 반죽으로 빚는다. 메밀반죽으로 만든 손칼국수에 넣고 함께 끓여 내는 데 쫄깃 담백한 맛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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