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송광사 새벽예불 "청정한 독경소리에 번뇌 사라지고…"

  • 입력 2002년 1월 2일 18시 36분


새벽 3시. 엄동설한에 밤새 몸서리치던 문풍지를 뚫고 목탁소리가 방안에 스며 들었다. 문틈으로 내다 보니 스님 한 분이 목탁치고 독송하며 경내를 돈다.

산사의 하루를 여는 도량석(道場釋). 그 소리, 어쩌다 절바람들어 하룻밤 절에서 묵고가는 세속의 객손에겐 그저 특이한 ‘모닝콜’로 들릴지도 모를 일. 그러나 불법의 수행도량에서 도량석은 단순히 잠을 깨우는 의식이 아니다. 자비를 베풀고 법음을 전하는 깨달음의 도량을 열어 생명있는 모든 것이 함께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를 서원하는 성스런 수행의식이다.

전남 순천 송광사(주지 현봉스님). 달없는 그믐 하늘에 별빛이 현란하다. 가을밤 귀뚜리 울음처럼 찬연한 새벽하늘 별빛. 어둠을 뚫고 눈 맑은 스님들이 대웅보전의 법당에 모여 들었다. 법당안 맨 앞줄은 황갈색 옷의 행자. 그 뒤가 장삼가사의 스님들 자리다. 정면 제단의 금빛 부처님을 향해 방석에 무릎꿇고 앉은 스님들. 어제 그믐날 새로 깍은 머리에는 파르나니 빛이 서렸다.

“둥, 둥…”. 법고(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북)소리가 법당안을 메웠다. 목어, 운판, 범종의 울림이 뒤를 이었다. 이 사물(四物)을 울림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울려 사는 모든 일체 만물이 함께 깨어 불법을 따라 부처가 되자는 숭고한 뜻을 담는다.

그 소리의 바다 안에서 스님들은 참회진언과 여래십대 발원문을 올렸다. 새벽예불에 앞서 참회와 발원의 기도로 스스로 수행의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다. 그 범종의 마지막 울림에 법당안 스님 오십여분이 함께 일어섰다. 새벽예불이 시작된 것이다.

3시반. 새벽예불은 청정한 마음을 차에 담아 올리는 다게(茶偈)로 시작됐다. 이어 다함께 오분향례를 외우며 절을 했다. 기필코 부처를 이루겠다는 간절한 서원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 독송 가운데 절을 하며 반복하여 외우는 구절, ‘지심귀명례’(至心貴命禮). “주머니의 안팎이 둘이 아니듯이 부처와 내가, 나와 남도 둘이 아니지요. 지극한 마음으로 참본심을 향해 내 스스로에게 절을 올리며 발원하는 것입니다.” (송광사 주지 현봉스님의 말씀).

스님 모두가 반야심경을 함께 외우고 나면 새벽예불은 끝난다. 이때가 4시. 절반쯤은 자리를 떴지만 나머지 스님은 목탁에 맞춰 금강경을 외웠다. 강원에서 공부중인 학승들이었다.

죽비 소리가 들렸다. 참선시간이었다. 참선에 이어지는 백팔배. 무릎꿇고 머리 조아리는 제배의 자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불법에 귀의하겠다는 서원의 지극한 표현이라고 했다. 새벽예불에 참가한 제가불자도 함께 백팔배를 올렸다.

10여분후. 백팔배마저 끝났다. 이제 아침공양 시간. 불가에서는 밥먹는 것까지도 수행의 한 방편이다. ‘계공다소 양피래처…’(計功多小 量彼來處·이 공양이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가를 헤아리고). 공양에 앞서 외우는 게송인데 이 소리가 들리면 스님들의 발우공양이 시작된 것이다.

불자의 공양은 발우공양 다음이다. 이날 아침 공양은 노란 호박죽에 정갈한 반찬 서너가지. 벽에 ‘공양하는 마음가짐’이라는 오관게(五觀偈)가 붙어있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아 진리를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공양은 설걷이까지를 포함했다.

공양을 마쳤어도 산사의 밖은 아직 깜깜하다. 동이 트려면 아직도 한시간은 족히 남은 새벽. 도시는 아직도 게으른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이 시간에 사찰의 하루는 벌써 시작된지오래다. 그 아침도 어제와 그리 다름없는 세속범부의 것과는 다르다. 참회와 발원으로 번뇌를 몰아내고 용맹정진의 수행심으로 단단히 무장한 수행자의 불심 치열한 빛나는 아침이다.

▼여행정보

◇찾아가기 ①손수운전〓호남고속도로/주암IC∼27번국도(보성 벌교 방향)∼송광사 삼거리/834번 지방도∼매표소(도립공원)∼송광사 주차장 ②대중교통 △순천〓역앞에서 11번 좌석버스(1시간10분 소요)탑승 △광주〓광천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송광사행 버스(광우교통·1시간반 소요) ◇새벽예불 참례〓경내 요사채(방 6칸)에서 잠을 잘 경우만 가능. 새벽예불에 참가할 경우 예불절차에 따라 스님들과 함께 예불을 올려야 한다. 경내유숙은 하루 이틀정도 앞서 송광사 원주실(061-755-5300)의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 단체유숙은 종무소(061-755-0107∼9)에 문의. 경내 숙식비(공양 포함)는 받지 않으니 시주로 감사표시를 하면 된다. 홈페이지(www.songgwangsa.org) 참조.

▼패키지여행

승우여행사(www.swtour.co.kr)에서는 동안거 결제중인 송광사에서 새벽예불에 참례하는 겨울산사 여행(무박2일)을 떠난다. 40명 한정. 5일 서울 출발, 5만5000원. 송광사(도량석 새벽예불 아침공양)∼낙안읍성∼선암사∼지리산온천. 02-720-8311

송광사〓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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