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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8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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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경쾌함’. 이 책을 읽고 나서 우선 드는 느낌이다. 이 책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를 화두로 삼아 조선조 후기 풍속을 설명한 것이다. 시원스럽게 글을 쓰는 저자의 솜씨가 흡인력을 높여준다.
사실, 혜원의 풍속화 몇 점은 우리들에게는 ‘이발소 그림’ 같은 식상한 소재로 신선한 맛이 없는 편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혜원의 그림 30폭을 대상으로 이야기 한판을 벌이고 있다. 저자 자신이 선언하듯, ‘그림’이 아닌 ‘풍속’의 시각,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에로티시즘의 시각으로 그림을 읽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혜원의 그림에서 에로티시즘이란 관점 역시 식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 이 책의 장점이 드러난다. 저자는 풍부한 자료를 동원하여 자세한 설명과 추리를 전개하고 있다. 소박하고 단선적으로 혜원의 그림이 에로티시즘을 표현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질적인 차별을 두고 있다.
저자는 화폭의 소품, 즉 흘레하는 개나 참새, 꽃과 나무, 괴석, 광주리, 집기, 가구, 탈것 같은 것에 시선을 던져 화가 신윤복이 묘사하고자 했던 화폭 속 인물들의 삶을 전하는 키워드로 읽어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 각 그림의 중심축인 각종 인간들의 신분과 의복, 신발, 모자, 차림새, 표정 등을 통해서 그림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추정한다. 그림 속의 소품과 인물의 상황은 우리 머리 속에 완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수백년전 고인의 근엄하고 점잖은 삶이 아니라 점잖지 못하고 파격적인 성에 관한 발설이라는 것이다. 성의 공개적 표현이 금기시된 사회에서 소품 등의 다양한 장치를 통해서 파격적으로 현시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저자의 추정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그럴 법하여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고, 그로 인해 지적 후련함을 얻을 수 있다. 혜원의 그림을 수 없이 본 사람은 많지만 이렇게 조각조각 뜯어서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후기 사회의 은폐된 진실을 혜원의 그림이 보여준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만든다. 혜원의 그림에 대해서 막연하게 가진 느낌과 지식이 이 책의 설명으로 분명한 근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저자가 의도한 것이 혜원의 회화적 성공여부를 말하기 위한 데 있지 않고 그림을 매개로 풍속을 말하기 위한 것에 있다면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은 현대를 포함해서 과거 우리의 구체적 일상을 이해하려는 학문적 시도 가운데 성공한 사례로 꼽힐 것으로 믿는다.
안 대 회(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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