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 학술회의결산]한일병합 부당성 국제학계 공감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8시 39분


16,17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한일병합의 역사적 국제법적 재검토’ 국제학술회의는 1910년 한일병합 과정의 문제점을 국제 학계에 확산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학술회의는 처음으로 한국 일본과 미국 영국 등 제3국의 역사학 국제법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일병합의 적법성 여부를 토론한 자리로 일찍부터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1월과 4월 미국 하와이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워크숍에 이어 열린 이번 본 회의에서는 한일병합의 불법성에 관해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참석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바람에 조만간 한차례 더 학술회의를 열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한국 학자들은 한일병합이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부당하다는 데 대해 국제적 공인을 이끌어 내려했으나 일단 뒤로 미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 학술회의는 한국 입장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우리 학자들은 보고 있다. 한국 학자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한일병합 절차의 부당성을 증명하는 사료를 발굴, 공개해 참석 학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 점을 성과로 꼽았다.

또 한국 학자들의 주도로 열린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세계 각국 학자들에게 한일병합의 문제점을 부각시킨 것도 성과 중 하나다. 즉 우리측이 적극적으로 한일 병합을 논의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함으로써 국제 학계의 관심권 밖에 있던 한일 병합 문제를 주요 이슈로 등장시킨 것.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 학자들은 한일병합이 한일 양국간의 문제 만이 아니라, 인권과 국가주권, 역사 전반에 대한 재인식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인류의 공통과제라는 점을 내세워 제3국 학자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이번에 참석했던 학자들은 동아시아 관련분야 연구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그 성과는 적지 않다.

이번 학술회의는 또 일본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세계 학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일본학자가 한일병합의 국제법적 불법성을 인정하는 등 한일병합의 타당성에 관해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차가 있음을 참석학자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한일병합의 불법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추가사료의 발굴과 검토가 시급하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예컨대 ‘고종실록’과 같은 사료에 대해 히로시마(廣島)여대 하라다 다마키(原田環) 교수는 이를 믿을 만한 자료로 인용한 반면,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고종실록’이 일본의 영향력 아래서 만들어졌음을 들어 신뢰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이런 문제는 일본이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사료를 찾아냄으로써 일본의 불법성을 명확하게 확인시켜줘야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제국주의 시대에 국가 또는 국가의 대표자에 가한 강제와 강압의 국제법적 효력에 대한 각국 학자들의 인식차이도 해소시켜야 할 과제.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한국인들이 일제의 강압에 의한 한일병합이 부당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데 반해, 일본이나 서양학자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른 법 해석의 차이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추가 학술회의를 통해 한국학자들의 주장을 확산시켜 나간다면 결국 세계 학계도 한일병합의 불법성과 역사적 부당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이번 회의에 참가한 우리측 학자들의 전망이다.

<보스턴〓김형찬기자>khc@donga.com

◆ 하와이대 반 다이트 교수 "日 한국에 사과-보상조치 있어야"

이번 한일병합 국제학술회의에서 가장 주목을 끈 발표자는 미국 하와이대 존 M 반 다이크 교수였다. 국제법 학자인 반 다이크 교수는 발표문 ‘일본의 한국 병합과 미국의 하와이 병합 비교 연구’를 통해 두 병합 과정의 문제점과 그 폐해를 차근차근 점검하며 그로 인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을 호소력 있게 제시했다.

“사실 지난 1,2차 워크샵에는 참석하지 못해 논의 진행과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와이대에서 하와이와 미국의 병합문제를 연구한 국제법 학자로서 한일병합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두 병합은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제국주의의 번성기에 이뤄진 것이지만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중요한 것은 하와이 병합이나 한국 병합은 모두 강자가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했고 그래서 잘못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는 이제 모든 인권 침해는 반드시 조사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하고, 또한 모든 인권 침해 관련범죄는 처벌돼야 하며, 인권 침해의 피해자는 보상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권력 남용과 이로 인한 피해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화해(reconciliation)’를 역설했다.

“화해를 위해 필요한 행동은 약자를 침해했던 강자가 약자에게 가치있는 무언가를 이양해 주는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 화해는 잘못의 인정과 잘못한 자의 처벌뿐 아니라 땅과 돈 등 재산을 양도해 줘야 합니다.”

그는 “하와이와 한국에는 강자에 의해 자율권을 박탈당함으로써 곪아들어간 심각한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서 이를 치료할 구체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한국의 화해를 위해서는 일본이 국제법적으로 침해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일정한 형식의 보상도 따라야 두 국민 사이에 우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가 정착될 수 있을 겁니다.”

<보스턴〓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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