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 기자의 여의도이야기]여의도 객장의 결투

  • 입력 2001년 11월 12일 18시 44분


결투라는 단어가 나오면 흔히들 서부영화 ‘OK목장의 결투’를 떠올린다.

추억의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와 버트 랭카스터가 공동 주연한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떠돌이 도박사 닥 할러데이(더글러스)와 전설의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랭카스터)가 치열한 총격전 끝에 소도둑떼인 클랜턴 일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1881년 캔사스주 닷지 시티에 위치한 OK목장의 마굿간에서 있었던 실제 결투를 소재로 했다. 보안관 어프측과 클랜턴측은 좁은 마굿간 안에서 상대편을 마주 보고 30여발의 총알을 주고받았는데 3명이 죽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결투에 걸린 시간은 고작 30여초.

이보다 화끈한 결투가 또 어디 있을까. 거의 반세기쯤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아직도 ‘결투’의 대명사처럼 오르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증권가에서도 ‘OK목장의 결투’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테러 사태 이후 외국인과 국내 기관의 끝없는 매수 매도 대결을 빗대는 말이다. 10월 이후만 해도 외국인은 거래소에서 2조2000억원 가량을 사들인 반면 기관은 약 1조2000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주 금요일 재상장된 국민은행 주식을 놓고 1000억원 가량을 ‘사자’와 ‘팔자’로 맞붙은 것은 이번 결투의 하이라이트였다.

일단 현재까지는 외국인이 우세승을 거두고 있는 상황. 외국인이 이처럼 선전하자 증권가에선 승리를 뒷받침한 전략에 대한 분석이 한창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매매 특징 가운데 하나인 ‘바텀-업(bottom up)’에서 원인을 찾는다.

경제 정치 여건과 거시 변수를 먼저 따진 다음 투자할 시장을 선정하고 그 시장 안에서 유동성과 시가총액이 일정 이상인 종목에 투자하는 것을 ‘톱-다운(top down)’ 방식이라고 한다. ‘바텀-업’은 그 반대로 국가별 거시 환경을 무시하고 여러 시장 가운데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내 투자하는 매매 방식.

즉 국내 기관이 거시지표에 얽매어 투자를 주저하고 있는 동안 외국인은 저평가 우량 종목을 사들였고, 마침 경기회복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 이야기로 잠깐 돌아가자면 OK목장 결투의 패배자인 클랜턴측이 최근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있다고 한다. 클랜턴측이 사실은 영화에서처럼 소도둑떼가 아니었고, 결투는 남북 전쟁 당시 남군편이었던 클랜턴가와 북군편이었던 어프가의 해묵은 증오가 맞부딪힌게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명예 회복 운동은 힘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다.

주식시장은 계속 열리고 지금의 평가가 미래에는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국내 기관들도 명예 회복을 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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