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유엔주재 북한대사

  • 입력 2001년 11월 12일 18시 31분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뉴욕 채널’이라는 게 있다. 양국 사이에 외교관계가 없기 때문에 편의상 미국 국무부가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와 접촉, 현안을 논의하는데 이를 뉴욕채널이라고 한다. 양국 사이에 중요 현안이 없을 때는 이 채널이 있는 둥 없는 둥 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이 세계적 이슈가 됐던 94년처럼 화급한 사안이 발생하면 뉴욕채널이 뜨거워진다. 최근에는 북-미 사이에 특별한 현안이 없어 최소한의 실무 접촉만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뉴욕채널의 미국측 창구는 국무부 한국과다. 남북한 문제를 모두 다루는 이곳에는 현재 약 2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뉴욕채널을 가동하는 미국측 실무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과장은 중국계인 에드워드 동. 그는 서울주재 미 대사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며 한국말도 잘하는 한반도통이다. 동 과장은 현안이 없더라도 가끔 북한 대표부와 전화 통화를 하거나 다른 용무로 뉴욕에 가더라도 북한 대표부 사람들을 만나는 등 필요할 때 뉴욕채널을 잘 가동하기 위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채널의 북한측 창구인 북한대표부 새 대사로 박길연 외무성 부상(차관)이 곧 부임할 것이라 한다. 박 부상은 85년부터 96년까지 11년간 유엔대사를 지낸 유엔외교 베테랑이다. 그는 92년초 한국의 유종하 대사가 부임해 “앞으로 잘해 봅시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문제가 있겠습니까. 내가 상대한 남한대사가 몇 명인데…”라고 대꾸해 유 대사의 기를 죽였다고 한다. 그는 최광수 박근 박쌍용 현홍주 노창희씨 등 한국의 역대 유엔대사와 차례로 ‘일합’을 겨룬 ‘경력 보유자’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한미 양국은 박 부상이 다시 유엔대사로 부임할 것이라는 소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최근 반테러 관련 2개 협약에 가입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국장급이 맡던 유엔대사를 부상급으로 격상시켰기 때문에 북-미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과거 유엔 무대에서 남한을 향해 독설을 퍼붓던 박 부상이 이번에는 어떻게 나올까. 그에게도 세월이 약이 되었기를 기대한다.

<방형남논설위원>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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