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제성호/‘한국인 처형’ 책임 따져야

  • 입력 2001년 10월 30일 18시 42분


중국이 9월에 한국인 마약사범 신모씨에게 사형을 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한 달이 넘도록 이를 알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中 국제협약 무시 통보안해▼

더욱이 신씨가 1997년 9월 중국공안에 체포된 후 4년이 지나도록 정부가 피의자 체포사실을 제외하고는 재판진행 상황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하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또 선양(瀋陽) 주재 영사사무소는 공범으로 체포된 정모씨의 옥중사망 사실을 통보받고도 상부에 늑장 보고하고, 가족들에게는 알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중국에 있다. 중국은 1963년에 채택된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일명 영사협약)’ 제36조 1항 (b)호에 따라, 우리측에 피의자 체포사실을 지체없이 통보하는 한편 체포·구금되어 있는 신씨가 우리측 영사관원과 신속하게 통신·접촉에 의해 연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했다.

또 영사협약 제37조 (a)호에 의거, 중국은 신씨의 사형집행과 사망사실에 관해서도 중국 주재 우리 영사관에 즉각 알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의무를 1개월 간이나 게을리 하거나 불이행했다. 사형선고 사실(확정판결)을 우리측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같은 국제법상의 의무 위반은 국가책임을 발생시키며, 마땅히 우리는 중국 정부에 대해 엄격한 법적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외교적 항의나 재발방지 보장 요구와 같은 일과성의 조치만으로는 안 된다. 특히 변호인 선임의 기회 박탈 등 재판절차에 명백한 불공정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반드시 따져야 한다.

중국의 국제법적 책임과는 별도로 자국민 보호를 소홀히 한 우리 정부도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영사협약에 의해 보장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사협약 제36조 1항 (c)호에 의하면, 우리 영사관원은 현지에서 (마약범죄 등으로) 구금·유치된 우리 국민을 방문하고, 그와 면담·교신하며, 법적 대리를 주선하는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정부가 신씨에게 이러한 적극적인 영사보호를 제공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이번 사건의 재판 진행과정을 거의 몰랐다는 사실이 그 점을 잘 말해 준다.

정부는 올 6월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공식문서를 통해 중국에 수사진행 상황을 알려달라고 할 정도로 이번 사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후 중국 측이 아무런 답변을 해오지 않자 정부는 더 이상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는 대중 저자세 외교의 한 단면이자,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1992년 8월 한중수교 이래 지금까지 양국 간에 인적 교류가 꾸준히 증대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총 178만8000명(한국인 134만8000명, 중국인 44만명)이 양국을 왕래했다고 한다. 인적 교류의 증대로 우리 국민의 국외 범죄 발생건수는 자연히 증가하게 될 것이다.

수교 후 9년이 지난 현재에도 중국은 우리에게 있어 여전히 치안이 허술하고 신변안전의 위협이 도사리는 위험지역으로 남아 있다. 작년 초 발생했던 조선족의 한국인 납치사건 같은 것은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옌볜(延邊)은 북한 기관원이 은밀하게 활동하는 지역이어서 우리 국민의 신변에 대해 각별한 보호가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 체류하는 자국민의 영사보호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 低자세 외교도 한몫▼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의 영사교민정책은 아직도 해외에서 비자발급, 혼인신고 접수 등 ‘동사무소 역할’을 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영사들이 ‘본국에서 오는 손님’ 접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영사교민정책의 중심을 바로잡아 해외공관들이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및 관련 서비스 제공에 최우선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필요하다면 영사보호 담당인력을 확충하는 동시에, 공관장의 지휘체계 및 유관부처간의 협조를 강화함으로써 자국민보호 기능이 보다 활성화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제성호(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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