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국민詩-난해詩 새롭게 읽는다…詩 재해석서 출간

  • 입력 2001년 10월 29일 18시 33분


최근 출간된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이승원 외 지음·이룸)는 난해시 28편에 대한 소장 국문학자 26명의 새로운 해석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이 존재해온 이육사의 ‘절정’, 김수영의 ‘풀’ 등 이른바 ‘국민시’로 불리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풀이를 시도했고, 그간 평가가 거의 없거나 해석이 엇갈리는 기피작(이상 ‘오감도’, 서정주 ‘바다’ 등)에 대해서는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새 해석의 대표적인 예는 “매운 계절의 챗죽에 갈겨 /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로 시작하는 이육사의 국민시 ‘절정(絶頂)’(1940)이다. 마지막 행 “겨울은 강철로 된 무재갠가보다”는 작가의 강인한 의지를 과시한 작품으로 여겨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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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명희씨(서울시립대 강사)는 이런 해석에 딴죽을 건다. 마지막 ‘∼보다’라는 종결부는 불확실을 전제로한 추측의 표현이므로 육사 자신의 ‘강철같은 의지’를 보여준 표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마지막 연은 세간의 평처럼 이 시의 백미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가장 ‘모호한 부분’이자 ‘허약한 부분’이란 주장이다. 그 반증으로 ‘이 시가 후배 시인들에게 그 명성에 합당할 만큼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것’을 들고 있다.

이선이씨(경희대 강사)는 만해 한용운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님’이 조국해방을 상징한다 식의 모범답안을 거부한다. 1970년대 국학연구 중흥기라는 시대 분위기가 만든 역사적 논리적 명쾌함이 만해의 상징시가 갖는 의미를 축소시킨다는 주장이다.

이씨는 만해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당신을 보앗슴니다’(1926)에 대한 정밀 분석과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는 ‘군말’ 등 다른 작품을 참조한 끝에, 만해의 ‘님’은 조국이나 석가가 아니라 “삶의 의지를 자유롭게 발양(發陽)시켜주는 생명원리”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이승하 교수(중앙대 문예창작과)가 시도한 미당 서정주의 난해시 ‘바다’(1938)의 적극적 해석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 작품이 실은 암담한 일제강점기에 웅혼한 기백과 진취적 기상의 정서를 노래한 보기드문 작품이라는 것이다. 특히 “애비를 잊어버려, / 애미를 잊어버려, / 형제와 친척과 동모를 잊어버려. /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버려”라면서 “아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 아메리카로 가라! / 아푸리카로 가라!”고 노래한 대목은 당시 청년들에게 식민지 원주민으로서의 절망감을 극복하고 세계 어디론가 떠나라고 충동질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당시 미당이 친일작품을 몇 개 썼지만 ‘바다’같은 작품은 그가 가졌던 ‘우국지사적 심경’의 발로가 아니겠느냐는 해석은 미당에 대한 재평가가 분분한 문단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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