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용호/레임덕 치유책

  • 입력 2001년 10월 28일 19시 05분


미국정치에서‘레임덕(lameduck)’의 원래 의미는 재선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마치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처럼 정책 집행에 일관성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대통령의 권력누수 현상 내지는 국정장악력이 떨어진 상태로 본다. 우리나라에서 레임덕이 오면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나랏일은 뒷전에 두고 대선 주자에게 줄서기를 하는 등 국정이 표류될 우려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법과 제도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국정운영 방식을 고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레임덕은 당연한 현상이고, 또 이를 억지로 막기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민주화 이후 레임덕 현상이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각각 정원식 총리 경질 요청과 김현철씨 구속을 기준으로 보면 임기만료 6개월 전과 1년 전부터 레임덕을 겪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지난주 민주당이 재·보선에서 0 대 3으로 완패하자 벌써부터 심각한 레임덕에 들어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에선 임기 말의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게 부담이 갈 수 있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자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김영삼 대통령 말기의 외환위기에서 볼 수 있었듯이 레임덕 기간이 길수록 국가경영이 피폐해진다. 이를 해결하려면 김대중 대통령은 레임덕을 인정하고 원내 제1당인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만약 김 대통령이 국회를 장악하려고 덤비면 여야 대립은 더 심화되고 레임덕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특히 김 대통령에겐 새 정책을 내놓기보다 기존 정책을 잘 마무리짓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야당도 대통령과 여당의 발목을 잡거나 행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일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국회를 책임진 원내 제1당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의정활동을 펼쳐야 한다. 만약 야당이 다음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현 정부의 레임덕을 부채질하거나 수수방관한다면 정작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큰 난관에 부닥칠 것이 분명하고, 자신들도 임기 말에 똑같은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김용호 객원 논설위원 (한림대교수·정치학) kimy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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