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작가회의 “보복전쟁 참전 반대”

  • 입력 2001년 9월 19일 13시 39분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는 19일 오전 11시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미국의 보복전쟁을 반대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성명의 요지는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에 대한 문학인의 우려를 표하면서 미국 정부에 대해 현명한 대응을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한국 정부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미국의 비이성적인 전쟁 기도에 우리나라가 참여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과 민족의 과제를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라면서 참전을 반대한 점이 주목됩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보복전쟁을 반대한다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을 반대하는 문학인의 견해 지난 9월 11일 미국에 가해진 미증유의 테러사태는 그 동안 인류가 어렵게 싸워 획득해온 이성과 합리성의 가치를 한꺼번에 무화시킨 대참사였다. 그 인과를 곰곰이 따지기에 앞서 우리는 하루아침에 희생당한 당사자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번 테러사태가 세계인이 모두 지켜보고 공감한 바 그대로 인류사에서 마땅히 추방해야 할 범죄 행위라고 본다. 그럼에도 우리는 깊은 우려감 속에서 미국 정부의 대응방식도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부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의 씨를 말리겠다는 명분 아래 이미 폐기했던 '더러운 전쟁'의 방식은 물론 핵무기 사용마저 불사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 전쟁은 이번 재난을 훨씬 능가하는 대참사가 될 게 분명해 보인다. 이번 사태에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근본적인 원인이 내재되어 있다. 그 동안 미국 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제3세계를 비롯한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가한 폭력과 상처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번 사태는 지난 냉전 시기 이래로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에 대해서 종교적·문화적 편견에 기대어 강권과 패권 정책을 펼쳐온 미국 자신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왜 세계 지성들의 이런 지적을 겸허하게 귀 기울여 듣지 않는가? 테러범들이 지탄과 고립을 감수하고 보복을 예상하면서까지 왜 이런 테러를 저질렀는지, 미국 정부는 먼저 냉정한 성찰과 반성을 하여야 할 것이다. 임박한 미국의 대응이 테러조직에 국한한다면 그것은 필요하고도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은 매우 결연한 태도로 '21세기 첫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보복전쟁은 이번 테러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보호하고 있는 탈레반 정권의 응징에 그치지 않고,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의 고통과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테러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미국민의 안위가 지켜져야 하는 것이 당위라면,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의 삶과 생명 역시 미국민들과 똑같이 고귀하고 소중하게 대접받아야 한다. 더구나 미국의 공언대로 핵무기 사용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인류 멸망을 재촉하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누가 미국에게 인류를 파괴할 가공할 자유를 부여했단 말인가. 테러와 보복, 전쟁과 살육의 비극을 끝내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미국 정부는 냉정히 숙고하기 바란다. 우리는 21세기의 출발을 전쟁으로 시작할 수는 없다. 테러와 전쟁은 20세기의 마지막 유산이 되어야 한다. 인류공동체가 더 이상 테러와 전쟁의 공포에 속박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계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이번 테러사태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거듭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피의 악순환을 초래할 미국의 보복전쟁 기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아울러 한국정부가 지상군 파견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바 이것이 사실이라면, 베트남전 참전의 비극적 결말을 거울삼아 다시 한 번 검토하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지금 남북간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화해와 평화를 고창하면서 이를 어렵게 실천해가는 과정에 있다. 그 어떤 형태로든 미국의 비이성적인 전쟁 기도에 우리나라가 참여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과 민족의 과제를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임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2001년 9월 19일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윤정훈 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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