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규민]사회주의가 아니라면

  • 입력 2001년 8월 10일 18시 48분


일국의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학식높은 분의 주장에 토를 다는 것이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정책위의장의 ‘사회주의론’에는 선뜻 찬동하고 싶지 않다. 김의장이 근거로 제시한 사례 가운데 관치금융은 자신이 부총리 재임시절에도 엄연히 존재했었지만 아무도 당시 정권을 사회주의정부라고 하지 않았다. 공적자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김의장이 부총리시절에 외환위기를 맞았다면 공적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부실금융기관을 살릴 수 있는 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과연 다른 묘약이 있었을까.

한나라당 집권 당시 김영삼대통령은 “가진자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사회주의커녕 파쇼국가, 경찰국가를 연상케 하는 무서운 말이었다. 기록을 돌이켜보건대 이처럼 역대 정권의 주체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주 사회주의적 언행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한 것은 당시 그런 정부를 사회주의정권이라고 비판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유독 ‘국민의 정부’ 들어 사회주의 논쟁이 증폭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아니라고 강변하는데도 거개의 기업인들이 정부정책을 불안과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는 까닭을 집권당은 아는가. 논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이념공세가 현실적으로 여론에 먹혀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여당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서민층을 지지기반으로 한다는 민주당은 같은 말,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과거 정권들 때와는 다른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하물며 현 정부가 가진자의 부담을 전제로 한 사회복지정책을 확대하고 있다면 생경한 환경에 따른 논쟁은 필연적 일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 여당의 설득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됐지만 전례없이 공격성향이 강한 여당은 야당과 여론을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시중에서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는 정책들을 놓고 보인 여당의 그런 태도는 사회주의 논쟁을 스스로 불렀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듯싶다. 한 발짝 더 속으로 들어가 얘기하자면 작금의 논쟁이 단순히 오해와 음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여당의 주장도 아직 해소되지 않는 많은 의문점들 때문에 대중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반드시 대칭의 개념은 아니지만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 경제제도가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이고 우월하다는 것은 이미 세계 경제사가 입증했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시장패권주의가 폐단으로 지적되기는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성취의욕을 자극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인류의 믿음은 더욱 굳어져왔다. 기업인들이 요즘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같은 자본주의의 특성이 ‘균등주의’를 앞세운 정부에 의해 퇴색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많은 경제정책이 시장경제 기본원리를 기준으로 볼 때 반자본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그 분석의 옳고 그름을 2분법적으로 가르는 것은 부질없는 논쟁이 될 뿐이며 그 논쟁이 정권에 결코 유리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경제주체인 기업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에 해당하는 재단의 지위와 권한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사립학교법이나 시장지배적 언론을 대상으로 한 개혁논쟁도 그렇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전진배치된 공정거래위원회가 상징하는 기업규제는 시장에서 이념논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인들이다.

기업인들이 특히 신경쓰고 있는 것은 그런 유의 정부정책에 일부 시민단체들이 당위성을 지지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이 시대 이념적 좌표상에서 기업의 정반대편에 서있는 시민단체의 그같은 행동은 정부와 사전 교감이 있었건 없었건 관계없이 침묵의 다수에게 불안감과 거부감을 준다는 점에서 정부에도 득이 될 게 없다.

시장위에 기업규제로 무장한 정부가 군림한다면 그 경제체제는 더 이상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명분, 어떤 방식에 의해서든 사적재산권이 제약되고 평등주의가 만연하면 기업의욕은 사라지고 경제력은 약화될 뿐이다. 경제가 죽으면 세상은 가장 평등하게 되고 여당은 더 이상 사회주의 논쟁의 악몽에 시달릴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집권당이 바라는 게 그것인가. 아니라면 지금 정부 여당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는 당사자들이 잘 알 것이다.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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