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장마가 끝나면 축구장에 가자!

  • 입력 2001년 7월 18일 16시 37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축구를 좋아하시는가? 물론, 무지막지하게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관심은 있으니까 이 글을 읽고 있겠지만… 만약 당신이 축구 팬이라면, 또는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의 스포츠 팬이라면, 당신은 현장에서 직접 관전하는 것을 즐기시는가? 뭐, 이 부분 역시 어지간한 스포츠 팬이라면 현장에서 쫌 뒹굴러 봤을 테고…

그렇다면!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 이놈 저놈(내지는 이뇬 저뇬) 붙잡고 경기장 가자고 꼬셨지만 그냥 나가리가 됐다거나, 기껏 꼬셔서 데리고 갔지만 경기 내내 심심 따분 칙칙한 표정으로 일관했다거나, 내지는 우째우째 해서 꼬셔 가기는 했지만 자기 자신조차 낯선 축구장 분위기와 TV와는 전혀 다른 생소함 때문에 난감하기 그지 없는데… 뭔가 아는 척도 좀 해 보고 싶고,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경기장에서 좀 더 현장감 있게 경기를 즐기고 싶은데…

초보 축구 팬은 물론이고 웬만한 축구 팬도 TV를 통해서만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경기장에서 보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경기장에서 축구를 즐기는 데에도 약간의 적응과 연습이 필요하지만, 많은 축구 팬들조차 처음 몇 번의 경기장 나들이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다시 TV 앞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매 경기가 월드컵 결승전처럼, 또는 한일전처럼 명승부가 펼쳐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 축구는 시즌 내내 경기가 계속되기 때문에 어쩌다가 벌어지는 한일전 같은 경기에 비해서 일시적인 긴장감도 떨어지고 폭넓은 관심과 언론의 조명도 받지 못한다.

만약 준비 없이 프로축구 경기장을 찾는다면, 당신은 어쩌면 ‘프로축구는 재미없어!’라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결론은 쉽게 깨지지 않는 고정관념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이미 그런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 적지않을 것이다. (찔리지?) 그러나, 프로 리그에는 A-매치와 달리 시즌 내내 나로 하여금 기대와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는 희망, 환희, 좌절, 복수 등이 시리즈로 펼쳐지는 남다른 재미가 있나니…

한 번 제대로 축구장에서 경기에 빠져 볼 생각들 없으신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축구장에서 멋진 야간 경기를 보면서 함께 즐거운 흥분 속에 빠져 보고 싶은 생각들 없으신가? 그리고, 함께 간 사람들 앞에서 쪼금 아는 척 해볼 생각은 없으신가?

일단 축구장으로!

만약 당신이 축구장 근처에 얼씬도 해보지 않은 초보자라면 문제가 조금 복잡해 진다. (솔직히 좀 심각하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좀 난감하기도 하다. 우짜냐…) 축구 경기 보러 가기로 맘 먹은 이상 최소한의 수고는 좀 해 줘야 할 것 같다. 자기 손으로 경기를 고르는 것 말이다. 무턱대고 아무 경기나 보러 갔다가는 어리둥절한 채 무료한 경기를 보기 십상이다. 경기장에서는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설명도 없고, 생각보다 낯선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스포츠 신문 사이트나 K-리그 홈 페이지에서 적당한 경기를 물색한다. 몇 가지 조건을 가지고 물색하기 바란다. 우선, 리그 상위 팀이나 인기 팀들이 격돌하는 주말 야간 경기를 권장하고 싶다. 그리고 최대한 자기가 잘 아는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 경기를 택하기 바란다. 물론 초보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들이라면 당연히 꽤나 알려진 스타급 선수들이 될 것이다. 최소한 주말 저녁 이름난 스타들의 모습을 보는 정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자는 것이다. (경기 전에 출전 선수 명단을 꼭 확인하기 바란다. 생각보다 스타급 선수가 결장하는 경우가 꽤 된다.) 그리고, 경기장 분위기가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비교적 많은 관중이 몰리는 경기를 선택하자는 것이다. 엉성한 공설 운동장 보다는 멋진 월드컵 경기장이나 전용 구장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요거이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다음은 응원할 팀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아마도 경기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이미 어느 특정 팀에게 마음이 끌리게 될 것이다. 가급적이면 오래 마음을 줄 수 있는 팀을 선택하기 바란다. 당신이 사는 도시에 프로 팀이 있다면 그 팀을 선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최소한 그 팀이 치를 전체 경기의 반은 홈 경기로 열리기 때문에 경기를 접할 기회도 많고, 또한 주위에 당신과 함께할 수 있는 동료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과 같이 측정 팀이 없다면 그냥 당신이 제일 맘에 드는 팀을 골라잡으면 된다. 함께 가는 사람이 쌩 초보라면 그냥 아는 선수가 많은 팀, 또는 빅 스타가 있는 팀을 부담 없이 찍어주기 바란다.

요 정도의 노력만 기울여도 경기장에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썰 정도는 풀만할 것이다. 최소한 당신이 사람들 손을 잡고 경기장으로 꼬셨다면 기본적인 ‘아는 척’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체면도 서고 분위기도 좀 살지 않을까? 특히 여친(내지는 남친)과 함께라면 쪽팔림을 면할 수 있는 준비쯤을 한다고 생각하자.

아울러 몇 가지 더 준비하는 것도 괜찮다. 맥주, 소주, 오징어 땅콩, 음료수, 커피, 빵… 이런 것들은 함께 가는 사람들 및 당신의 취향에 따라 알아서 챙기기 바란다. (우습게 보지 마시라. 생각보다 경기장 환경 졸라게 열악하다. 매점에 가 봐야 줄만 길고 가격도 조금씩 비싸다. 한여름 밤에 개고생 하면서 생수 하나 놓고 인상 구기는 커플 많이 봤다.) 어지간하면 스포츠 신문 하나 사서 가기 바란다. 거기에 출전 선수 명단이랑 경기 예상평, 관전 포인트 등도 나오지만… 무엇보다도 스탠드 의자의 먼지를 닦아 내거나 깔고 앉을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간혹 돗자리랑 휴대용 가스 레인지에 삼겹살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제발 이 짓은 하지 마시라! 당신도 쪽팔리겠지만 옆에 있는 사람 졸라 먹고싶다…)

축구장에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울 것이다. 만약 당신이 국가대표팀만 보아 왔다면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양 팀을 합해서 2-3명의 대표팀 멤버를 찾을 수 있다면 지극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바란다. 양 팀에는 생각보다 모르는 이름들이 많으며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다. TV에서 볼 때와 달리 경기장의 어느 구석에 눈을 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씹어 대던 송재익의 이바구가 그리워지는 순간 되겠다. (최소한 선수들의 명단과 등번호만 사전에 챙겨가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당황하지 말고 경기에 집중하도록 애쓰기 바란다. 이왕 경기장까지 찾은 터에 경기장을 잘 둘러보면 선수 이름과 등번호를 써 놓은 곳이 있다. (아쉽게도 이런 명단은 홈 팀의 것만 마련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서포터스의 응원을 참고하기 바란다. 슈팅을 날리거나 중요한 수비를 했을 때 서포터스에서 그 선수의 이름을 불러준다. 그리고, 당신 주변의 다른 관중들이 떠드는 이야기 속에서도 선수들 이름을 찾아 낼 수 있다. 문제는 당신이 축구 경기에 얼마나 몰두하는가 하는 것이다! 요 시점에 빨리 경기장 분위기에 익숙해 질 것!

사실 위와 같은 문제는 아주 사소한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경기 내용을 따라가기가 처음에는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알게 모르게 당신은 TV를 통해서 보던 습관 그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즉, 경기장 전체를 볼 수 있음에도 TV 카메라처럼 공이 굴러가는 곳만 응시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화면처럼 클로즈업이나 슬로모션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순간 순간을 놓치기도 한다. (요즘은 컬러 화면을 제공하는 경기장들이 많다.)

일단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상황부터 이해해야 한다. 슬로모션이나 클로즈업은 그 다음 문제다. 초보 팬에게 있어서 경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심판을 훔쳐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골문 앞으로 대쉬하는 상황에서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면 선심에게 눈길을 한 번 준다. 깃발을 높이 들고 있다면 오프 사이드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시 눈을 돌려 주심을 보기 바란다.

주심이나 선심이나 모두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하는 몸짓은 그 다음에 플레이가 재개 될 위치를 지시하게 된다. 반칙을 했을 때는 프리킥 할 위치로 달려가고 골이 터졌을 때는 센터서클 쪽을 지시하면서 그리로 이동한다. 선심의 경우 골 라인 아웃이 되었을 때는 깃발을 위로 들지만, 코너킥 상황이라면 깃발로 코너 아크를 가리킨다. 즉, 경기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멈추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잽싸게 심판을 흘겨 보고 요령껏 상황을 파악하라는 것이다. 좀 더 익숙해 지면 자신이 ?藍?상황을 알아 차린 후에 심판을 통해 확인을 하게 되며, 심판의 잘못까지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너무 확신하지는 마시라.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그리고 멀리 떨어진 관중석에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섣불리 썰 푸는 것에 주의하기 바란다. 주위 사람들한테 개쪽 당하는 경우 많다.)

가급적이면 경기장 전체를 보기 바란다. 아니, 보기 위해 노력을 좀 하기 바란다. 궁극적으로 경기장이 가져다 주는 별난 재미는 ‘현장감’과 ‘전체를 보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직접 축구를 즐기거나 자주 중계방송을 접한 사람이라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왕초보 팬이라면 장소를 약간 코너쪽으로 잡는 것도 괜찮다.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구석탱이 조용한 좌석에서 보는 것도 괜찮고,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게 경기장 전체가 눈에 잡히기 때문이다.

차츰 경기의 흐름에 몸을 맡겨본다. 우리편이 공격을 할 때는 함께 공격하고 수비할 때는 함께 수비한다. 경기장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재미 중 하나가 시선을 내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공을 몰고 들어가는 선수의 눈으로 볼 수도 있고 중계석에 앉아 있는 해설자의 눈으로 볼 수도 있다. 통상 관중석에서 바라보는 눈은 필드에서 뛰는 선수의 눈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기 때문에 좀 더 넓고 빠른 시각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선수는 (사실 대개의 선수들이) 내가 보는 타이밍과 시야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반대로 어떤 선수는 나의 시각은 물론이고 나의 예측마저 빗나가게 만들기도 한다. 경기의 흐름을 느낀다는 말은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과 같이 보고 같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당신이 스탠드의 동료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좀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말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입도 조금씩 바쁘고 걸걸해 지기 시작한다. 함께 간 여친이 고상하고 말쑥한 남자를 원한다면 각별히 주의하시라. 남자들은 일단 정신이 바빠지고 가슴이 벌렁거리면 십원짜리 말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기 쉽다. 더구나 축구라는 경기 특성상 십원짜리 모아서 만원 만드는 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되새김질 (우웩~)

경기의 흐름, 그리고 선수의 눈과 머리를 따라가는 것은 일종의 개인 전술과 부분 전술을 이해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자, 그러면 전체적인 전술을 한 번 익혀보자. 전체적인 팀 전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당신이 지금까지 경기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전체적인 그림으로 다시 정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기를 보는 중에 끊임 없이 예측하고 반추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때때로 만만찮은 사전 지식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우리처럼 아마추어 수준에서는 같은 팀의 경기를 반복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저 경기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팀의 포메이션과 주요 선수의 역할 정도를 파악할 수 있어도 큰 수확일 것이다.

일단 초행길이라면 현장감과 경기장 분위기 정도만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함께 간 사람들에게 전술과 전문성으로 까발리기 보다는 그냥 편안하게 경기를 즐기는 것이 분위기상 더 맞을 것 같다. 전체적인 전술이라든가 전문적인 시각, 경기에 대한 분석 등은 다음날 스포츠 신문을 읽는 것으로 대신하자. ‘아하!’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놀고 있네!’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스포츠 신문을 읽을 때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을 눈여겨 봐 두기 바란다. 비슷한 류의 썰을 푸는 기자들도 많고, 의외로 내 입맛에 맞는 기사를 곧잘 쓰는 사람도 있다.)

이제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현장에서 축구 경기를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시기가 된다. 방학 기간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여유가 생기고, 또한 야간 경기를 즐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다른 시기에 비해 관중수도 많은 편이다. 그리고, 리그 일정이 진행되면서 팀 순위가 어느 정도 윤곽을 나타내게 되며 화제를 모으는 신인이나 용병 선수가 등장하면서 관심거리가 더해진다. K-리그… 생각처럼 동네 축구 아니다. 당신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자, 이제 축구장에 가자! 한여름 밤 파란 잔디에서 펼쳐지는 투박하고 원시적이고 역동적인 힘과 스피드가 쉼 없이 펼쳐지는 경기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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