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군현/초정권적 '교육기구' 만들자

  • 입력 2001년 7월 6일 18시 30분


물은 언제나 끊임없이 흐르며 순서를 뛰어넘는 일 없이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간다. 만약 물웅덩이가 있으면 그것을 채우고 나서야 흐르는 것처럼 어느 단계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그 이전의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반드시 그것을 채우고 나서야 간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의 흐름은 어떠한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흐름을 틀어막고, 웅덩이를 만날 때마다 샛길을 모색해왔다. 국가 사회적으로 ‘공교육 붕괴’ ‘교육위기’라는 비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교육에 대해 이처럼 국민적 관심이 큰 이유는 교육이 그만큼 국민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상책약수(上策若水)라고 하였듯이 다른 어떤 일보다도 교육만큼은 물 흐르듯이 모든 삶의 바탕이 되어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정책을 입안, 추진하고자 할 때는 전문적인 검토와 공동체적 합의를 거쳐 웅덩이가 있으면 그것부터 채우고, 샛길을 찾기보다는 큰 흐름이 막힘이 없도록 이끌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는 교육과 관련한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고 교육개혁을 내세우며 수많은 정책을 쏟아냈다. 마치 웅덩이를 피하려고 샛길을 파헤쳐 놓듯이….그리고 그 결과는 국민혼란과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이 담보돼야 할 교육정책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입학제도의 경우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10여 차례 바뀌었고, 세부사항의 변화까지 포함하면 거의 해마다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입학제도가 바뀐 것은 큰 투자 없이 가시적인 실적을 거둘 수 있는 정책으로 간주돼 교육개혁의 단골 메뉴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교육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워 무리하고도 졸속적인 정책을 추진해 교단을 위기로 내몰고 교원들의 심리적 이반현상을 가속화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할 때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이다. 스승과 학생, 교원과 학부모, 교원과 정부 사이에 신뢰의 상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여 정신 없이 교육정책을 남발하고, 대학입학제도처럼 전 국민적 관심사인 정책을 수시로 바꾸거나 몇 년 앞의 교원 수급상황도 예측하지 못한 교원정년 단축과 같은 사례들이 계속되는 한 교육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선진국들은 국가경쟁력은 교육을 통해 길러진다고 보고 초당적, 초정권적으로 교육정책을 수립해 엄청난 국가재정을 투자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앞으로 모든 주요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실명 사용을 제도화하고 정권의 논리나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난 초당적 초정권적 국가교육정책회의(가칭)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 기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설치됐던 예전의 대통령 또는 교육부장관의 자문기구와 같은 성격이 아니라 ‘국가교육정책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특별법(가칭)’과 같은 법률을 제정해 안정성을 확보하고 국가 교육정책의 심의 평가에 대한 법률적 권한과 기능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위원회 구성은 교육계, 학부모단체, 시민단체 등에서 추천한 명망 있는 전문가를 대통령이 임명토록 하되,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임기를 보장함으로써 정파의 이해를 떠나 객관성이 담보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위원회에서는 국가 교육정책에 대한 기본방향의 설정 및 주요 교육정책의 심의, 그리고 시급한 교육 현안들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되 여기서 합의된 사항은 신속한 입법조치를 통해 시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가 입안 추진하는 교육정책의 공과를 평가하는 기능을 이 위원회에 부여함으로서 교육정책의 안정성과 책임성이 확보되도록 한다면 조령모개식 정책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뿐만 아니라 교육정책이 안정성과 일관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군현(한국교총 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