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길수 가족' 강제송환 막아야

  • 입력 2001년 6월 27일 18시 44분


탈북 소년 장길수군과 그 일가족 7명이 중국 베이징 시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사무소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오늘로 사흘째다.

26일 오전 UNHCR 사무소에 들어간 ‘길수네 가족’은 미리 준비해간 밧줄로 자기들 몸을 함께 묶고 독약병을 든 채 “중국 공안이 우리를 끌어내려고 들어오면 자살하겠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4년여에 걸친 고단한 탈북 여정의 막바지에서 생명을 건 모험을 감행한 이들의 처지에 우리는 깊은 연민을 느낀다.

현재로서는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한국에 올 수 있을지 여부를 속단하기 어렵다. UNHCR측에서는 이들에 대한 보호 의지를 적극 표명하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나왔지만, 이들의 ‘운명’을 결정할 중국쪽 태도가 아직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자국내 탈북자에 대해 난민 지위를 인정한 적이 한번도 없고, 이번에도 ‘중국과 북한간에는 난민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첫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 정부가 이번만큼은 다른 어떤 고려에 앞서 인도적 차원에서 다뤄줄 것을 촉구한다. 중국 당국은 그동안 탈북자 문제를 주권적 차원에서, 혹은 북-중관계만을 고려해 다뤄왔지만 그보다는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길수네 가족을 ‘사지(死地)’인 북한으로 돌려보낸다면 중국이 국제적 이미지 면에서 받게 될 타격도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안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 중국 정부가 황장엽씨를 제3국으로 추방했던 전례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정부도 길수네 가족이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외교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외 체류 탈북자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탈북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했는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통일과정 및 이후의 남북간 사회통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정부는 제3국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 탈북자 문제에 소극적으로만 대처할 게 아니라 탈북자 지원 민간단체와의 협조체제 및 지원책을 강구하는 한편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이 최소한 신변안전이나마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당국가와 막후 교섭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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