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수다]삐진 남편 달래주는 충무김밥

  • 입력 2001년 6월 18일 15시 46분


요즘 가수 박진영의 부부생활이 화제죠?

'따로 또 같이'식 부부생활이라고 해야 할까요?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고 서로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지만 부부의 사랑은 간직한다잖아요? 물론 저는 그런 멋진 말보다는 "여자친구에게 밥 해달라, 빨래 해달라 그런 거 바라지 않는다. 그러려고 결혼 한 거 아니다!"란 말에 손바닥에 불이 나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아내에게 밥 해달라, 빨래 해달라는 거 바라지 않는다는 남편이 몇이나 되겠어요? 대부분 "밥도 안해줄 꺼면서 뭐하러 결혼하냐?"고 입이 댓발은 나오겠죠. 하지만 누군 밥하고 싶어서 결혼한답니까? 그러고 보면 결혼이라는 거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환상은 너무도 다른 것 같아요. 남자들은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있으면 앞치마를 두른 아내가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자기야~"하는 그런 그림을 상상하는 모양인데, 여자들은 앞치마를 두른 남편이 아내 몰래 멋지게 스파게티를 만들어 놓고 깜짝 쇼를 한다거나 그런 걸 상상하지 않나요? (그 얼마나 부질없는 상상인지요...)

어쨌든 전 결혼을 하더라도 서로의 생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주부입니다. 그래서 주말에 남편이 집에 있어도 친구를 만나러 나가거나 쇼핑을 가거나 한답니다. 근데 이상한 건 남편을 방치하고 나온 저보다 제 친구들이 더 제 남편을 걱정한다는 거예요. "야, 신랑 밥은 어떡하니? 빨리 들어가자!" 라든가 "아니, 남편이 집에 있어? 그럼 나중에 만날 껄..."하며 아주 미안해하거든요. 도대체 남편 밥 챙겨주느라 친구도 만나지 못한다면 그게 행복한 인생인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신랑도 물론 토요일날 아내가 친구 만나러 나가는 것보단 된장찌개 끓여주는 게 더 좋겠죠. 하지만 절 말리지는 않습니다. 왜냐? 그거 못나가게 했다간 두고두고 시끄러울 테고, 집에 있는다고 된장찌개 끓여주란 법도 없고, 그럴 꺼면 차라리 나가서 맛있는 거나 사와라 그러는 게 낫죠. 특히 우리 신랑은 '충무김밥'을 아주아주 좋아해서 제가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충무김밥을 사가지고 들어오면 "헤~"하고 풀어진답니다. 삐진 남편을 달래는 특효약이기 때문에 저도 충무김밥을 아주 좋아하지요.

남편은 특히나 충무김밥에 딸려오는 오징어를 무지하게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둘이 앉아서 충무김밥을 먹다보면 전 늘 시어 꼬부라진 무김치 담당이고 우리 신랑은 말랑말랑하고 맛있는 오징어만 골라 먹는다니까요. 어찌나 얄미운지...하지만 온종일 방치해놨고 밥도 제때 챙겨주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에 (그 놈의 밥, 안챙겨준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걸 보면 저도 영락없는 한국 아줌마인가 봐요...아, 당당하고 싶다!) 그냥 말없이 무김치를 집어먹곤 하지요...

우리 신랑은 자기가 충무김밥을 만들기도 해요. 일요일 같은 때 부시럭 부시럭거려서 뭐하나 하고 나가보면 마른 김을 구워서 밥을 싸는 거예요. 거기다가 살짝 맛이 간 총각김치를 곁들여서 먹는 거죠. 오징어 손질하기가 겁나서 늘 모른 척 하다가 한번은 제가 오징어무침을 만들어 봤거든요. 껍질 벗기는 것만 빼면 생각보다는 간단해서 오징어를 삶아서 매운 양념만 하면 되더라구요. 그랬더니 우리 신랑, 김을 구워서 밥부터 싸더군요. 역시 충무김밥 마니아...

아예 오징어랑 김을 사다놓고 놀러 나가면 우리 신랑이 충무김밥을 만들어놓고 기다리지는 않을까요? 그러다간 김밥 한덩이 못 얻어먹고 쫓겨나겠죠? 그냥 저를 '자유부인'으로 살게 해주고 알아서 밥을 챙겨먹진 않아도 충무김밥 사다주면 "헤~"풀어지는 거에 만족해야할 것 같아요.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에 박진영같은 남자는 박진영 하나 뿐일테니 말이죠.

***충무김밥 만드는 법***

재 료 : 김 2장, 오징어 슛떳? 무 30g, 고추가루 3큰술, 설탕 2큰술, 식초 4큰술, 멸치액젓 1큰술, 참기름 약간, 깨소금 약간, 다진 파 약간, 다진 마늘 약간

만들기 : 1. 오징어는 껍질과 먹통을 제거한 후 5cm 정도의 길이로 채썰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담가 식힌다.

2. 오징어에 고춧가루 1큰술, 설탕1/2큰술, 식초1큰술, 다진 마늘, 다진 파, 깨소금을 넣어 오물조물 묻혀둔다.

3. 무도 크지 않게 썰어 식초물에 잠시 담가둔다.

4. 무가 어느 정도 삭으면 물기를 꼭 짠다.

5. 설탕 1큰술, 식초 2큰술, 고춧가루 11/2큰술, 멸치액젓 1큰술, 다진 마늘, 다진 파 등의 양념장을 만들어 4번 무를 간한 후 냉장고에 보관해둔다.

6. 김은 반 잘라서 밥을 얇게 편 다음 돌돌 말아서 3등분한다.

ps.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전 박진영이란 남자가 '왜?' '어떻게?' 그런 쿨한 결혼관을 가지게 됐는지 정말 궁금해요. 어렸을 적 미국에 살았다던데 그 영향일까요? 아님 박진영의 부모님이 상당히 진보적인 부부였을까요? 아님 가부장적 남편에게 데인 여자친구가 있는 걸까요? 저의 이런 호기심을 박진영이 알게 된다면 "거 되게 성가신 아줌마네...난 여자가 있는데..."라고 말할테죠? 흥, 이봐! 나두 남자는 있다구요...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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