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의원 출석부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42분


만기친람(萬機親覽)은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뜻.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국정을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라고 하니 ‘만기친람형 리더십’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기야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나라 일을 하나하나 챙기고 따지는 게 무에 잘못이겠는가. 문제는 그러다 보면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결정을 대통령에게 미루는 폐단이 나타나고 그것이 쌓이다 보면 대통령이 혼자 아무리 애써도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국회 상임위원회 출석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문제를 두고 집권 여당 내에 말들이 많다. 발단은 의원들이 각 상임위원회에 제대로 출석을 하지 않자 애가 단 원내총무가 ‘청와대에 다 보고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데서 비롯됐는데, 의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우리가 무슨 초등학생이냐, 출석 부르게’라는 것이다. 아무리 상임위 출석이 급하다지만 입법부 체면이 있지 행정부의 장(長)인 대통령에게 의원 출결사항까지 보고한단 말이냐, 3권 분립은 교과서에나 실으라고 있는 말이냐는 불평이다.

▷그러자 원내총무 대신 대표가 나서 ‘행정부가 아닌 당 총재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봐달라’며 넘어간 모양인데, 그 역시 꼭 틀린 말은 아니라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출석을 독려하려면 당 대표가 하면 될 일이지 그런 문제에까지 청와대를 들고 나와서야 공연히 대통령 욕보이기 십상이다. 설마 대통령이 직접 출석부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겠는가.

▷의원이 주요 법안에 대해 논의하고 표결해야 할 상임위에 결석하는 것은 국정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니 당연히 탓할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한들 대통령이 할 일과 안 할 일이 있는 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도와 시스템을 무시하는 인치(人治)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터에 대통령이 의원 출석부까지 들여다보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지도자는 좀 한가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상상력도 생기고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 대통령이 한가하기까지 바랄 수는 없다 해도 ‘만기친람형’은 이제 그만이었으면 싶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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