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인간이 되는가

  • 입력 2001년 4월 6일 18시 53분


“나는 오늘 내 과거에 대한 엄청난 진실을 알아내곤 끝없는 절망에 빠져 버렸습니다. 나는 김 아무개의 간을 이루고 있는 많은 세포들 중 어느 한 세포 속에 앉아 있는 이름 없는 유전자입니다. 평소 정소 속에 있는 친구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했습니다. 난자를 찾아 떠날 정자들을 만드는 일에 그들은 늘 바쁩니다. 그들의 분신들은 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는 흥분에 들떠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술을 걸러내고 있습니다. 누구는 늘 창조적인 일을 하며 사는데 나는 왜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는 겁니까. 너무도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난 그 친구들과 내가 같은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말았습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만들어진 하나의 수정란이 100조 개의 세포로 분화하여 하나의 인간을 형성하는 과정처럼 신비한 일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나의 세포가 둘이 되고 또 넷이 되는 일을 반복하며 서서히 각자의 운명이 결정된다.

누구는 늘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야 하는 피부세포 속에 들어앉게 되는가 하면 누구는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사고가 나지 않는 한 절대로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는 세포들로 배치된다. 어떻게 이 모든 설계도와 지침서가 수정란 그 한 세포의 유전자 속에 고스란히 적혀 있단 말인가.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인간이 되는가’는 바로 이 신비로운 비밀을 벗겨 보이는 책이다. 그러나 발생의 신비에 관한 비밀은 이제 겨우 양파의 누런 겉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책은 영국의 저명한 발생생물학자 루이스 월퍼트가 일반인을 상대로 쓴 책으로 거울 저 편에 있는 신비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결코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책의 앞부분에 소개되어 있는 몇몇 용어들과 개념들을 이해하고 나면 그리 어려운 여행도 아니다.

잘려나간 도마뱀의 꼬리는 다시 자라지만 왜 우리의 팔 다리는 재생되지 않을까.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우리 인간도 날개를 가질 수 있을까. 내 몸 속에서 꿈틀거리는 새 생명에게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것들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비록 이런 작은 의문에서 출발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당신에게는 또한 21세기 생물학의 가장 큰 숙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나는 과연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내 몸 속의 유전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지내는 것일까.

루이스 월퍼트 지음 최돈찬 옮김, 274쪽 1만원 궁리

최재천 (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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