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영재교육-호주편

  • 입력 2001년 4월 3일 19시 05분


◇초등생도 실력따라 고교서 수업

숙제를 하면서 가졌던 의문과 느낌을 발표해볼까요.”(담임교사)

“특히 문제풀이에서 실수에 대해 말해볼까.”(수학 전담교사)

호주 시드니 성아이브스북초등학교(St.Ives North Primary School) 6학년 영재반 수학수업시간. 여교사 2명이 숙제인 방정식 풀이에 대해 학생들의 발표를 유도했고 학생들은 서로 손을 치켜들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명의 교사가 수업을 하는 것은 수학수업의 독특한 풍경. ‘매스(math) 원더’로 불리는 수학교사 원더씨는 “교사가 2명인 이유는 아이들이 엉뚱하면서도 다양한 수학적 사고와 질문을 많이 쏟아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재반 수학수업은 일반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다. 이 반에도 수학실력이 뛰어난 일반 학생 2명이 함께 수업받고 있었다. 영재반은 3∼6학년에 학년별로 한 학급. 학급당 인원은 30명선이지만 수학수업은 학기와 학급에 따라 인원이 들쭉날쭉하다. 영재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초중고교간 학생교류도 이뤄지는 것이 호주 영재교육의 한가지 특징.

▼글 싣는 순서▼

  -1부 영재교육-

1. 미국
2. 싱가포르
3. 호주
4. 중국
5. 이스라엘
6. 한국

영재교육 책임자인 잔티나 하워드 교감(여)은 “얼마 전 국제 경시대회에서 자주 상을 받은 남학생이 있었다”면서 “학부모와 내가 번갈아가며 그 남학생을 제임스루스고에 데려가 수학수업만은 별도로 고교생들과 같이 받도록 했다”고 말했다.

12년 전 시드니 공립학교 가운데 처음으로 영재교육을 도입한 이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을 키워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학생마다 숙제도 다르게 내서 획일성을 배제한다. 아이들이 제출한 숙제를 교실마다 벽은 물론 ‘만국기처럼’ 공중에 걸어놓아 학생들에게 성취욕구를 느끼게 한다.

미국에서 영재반을 다니다 지난해 이 학교로 온 4학년 영재반 에밀리양(10)은 “미국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숙제도 좀 더 많고 다양하다”고 말했다.

한 6학년생의 필리핀 탐구숙제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분야별로 현안을 정리하고 ‘환경보호와 문맹퇴치 노력’ 등 나름의 ‘처방’까지 담겨 있었다. 시를 읽고 평을 쓴 숙제는 많은 독서량을 자랑하듯 여러 가지 문구가 인용돼 있어 대학생 수준을 능가할 정도였다.

풀 교장은 “창의성이 번뜩이는 재미있는 숙제도 많지만 때론 교사들이 이해하지 못할 난해한 내용들을 질문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지능검사(IQ Test)와 유사한 일반능력검사(General Ability Test)를 비롯해 독해능력 수리능력 작문실력 등 4가지로 영재교육 대상자를 선발한다.

풀 교장은 “시험을 치를 때 심리학자를 초빙해 학생들의 여러 가지 적성을 꼼꼼하게 살피고 검증한다”면서 “매년 영재반 신청자가 꾸준히 늘어 최근에는 경쟁률이 2, 3대 1일 정도로 치열하다”고 말했다.

호주 학부모들은 특이하게도 자녀에게 영재성의 징후를 발견하면 이를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하워드 교감은 “상담을 할때 자녀가 일반 학생과 다른 ‘비정상’이면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된다’고 말하는 학부모가 대다수”라며 “하지만 전국적으로 영재반이 늘면서 이런 인식은 바뀌고 있는 추세다”고 말했다.

딸이 영재반에 다니는 학부모인 슈 화이트헤드는 “열살난 딸아이가 영재반을 다니면서 더 이상 교사와 급우들의 눈치를 안 보고 맘껏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경쟁할 수 있게 돼 무척 행복해한다”는 감사 편지를 학교에 보내기도 했다.

이 학교 영재반을 나와 지금은 대학생이 된 리코 예더잭(19)은 영재반 교육에 대해 좋은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는 “늘 새로운 문제해결 방법을 찾고 뭔가 다르게 해석하려고 노력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정말 소중하며 지금껏 제일 큰 자산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운영되는 영재프로그램도 있다. 컨설팅회사인 DARX사에서 가상영재학교(www.vsg.edu.au)를 개설해 9주 단위로 영재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것. 초중고생은 물론 성인을 대상으로 영재교육을 실시하는 이 사이트에서는 수강생에게 매주 최소 3시간 이상의 공부량을 소화하도록 프로그램을 짜놓고 있다.

호주 7개 주 가운데 영재교육을 포함해 중요한 교육정책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는 1629개 공립 초등학교 중 67개 초등학교에 기회학급(Opportunity Class)으로 이름 붙여진 영재학급이 학교별로 1∼4개씩 모두 106개가 설치돼 있다. 또 월반제도가 활성화돼 있어 전체 학생의 3% 정도가 매년 월반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91년 발표한 영재교육 정부 전략안을 통해 공립학교에 영재교육 전문교사를 한 명 이상 배치하도록 하는 한편 각급 교육기관 운영자들에게 영재아동 판별 및 이들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 지속적으로 영재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교육부 케빈 브래드번 영재교육 담당관은 “앞으로 모든 초등학교에 영재교육이 가능한 영재반을 편성하는 등 다양한 교육환경을 마련할 방침”이라며 “영재아동은 물론 모든 학생이 골고루 자신에게 맞는 교육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영재교육센터 연구팀장 엘더씨

“우리 연구센터 소속 교수들이 뉴질랜드 홍콩 등 해외로 ‘출장 강의’를 다닐 정도로 영재담당 교사 연수 프로그램의 인기가 좋다.”

호주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육대에 설치된 영재교육연구정보센터(GERRIC·Gifted Education Research, Resource and Information Center) 로사린드 엘더 연구팀장은 “영재교육에서 ‘교사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호주의 영재교육 정책과 영재학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 센터는 또 올바른 영재교육을 위해 교사들이 체계적으로 연수하고 연구하도록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엘더씨는 “낙제생의 15%가 사실상 영재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기존 교육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도 각자 지닌 다양한 개성과 재능을 키우도록 도와주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들을 제대로 관찰하고 효과적으로 지도하면 특기 적성 교육은 물론 영재교육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면서 “영재교육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별다른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영재교육 담당교사 연수에서 영재아동이 흔히 겪기 쉬운 외로움과 고립감 등을 떨쳐버리고 또래집단과 공동체에 잘 적응하도록 지도하는 교습방법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호주 정부의 요청에 따라 91년 1년반 과정의 교사 연수 프로그램(COGE·Certificate of Gifted Education)을 개발해 호주 영재교육의 ‘뼈대’를 충실히 하면서 책과 오디오테이프 형태의 다양한 교재도 개발하고 있다.

또 모든 교사들이 양성과정에서 영재아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각 대학이 교육학 전공과정 선택과목인 영재아동학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주 정부에 제안해 추진하고 있다.

엘더씨는 “호주는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교육이념 때문에 일반 학생 위주의 교육을 중시하였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습부진아와 영재 등 모든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한 교육을 하는 것이 진정한 평등주의라는 인식이 보편화됐다”고 말했다.

◇부모를 위한 영재자녀 체크리스트

1.빠르고 정확한 정보기억력을 갖고 있다〓복잡 한 상황을 기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2.다른 애들보다 호기심과 지식욕구가 강하다〓 새 것을 수집하고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

3.동년배 친구보다 더 감성 적이다〓다른 사람의 감정 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4.어휘력이 풍부하다〓새 단 어를 잘 기억해 적절히 사 용한다

5.읽고 쓰거나 숫자 사용이 빠르다〓알파벳과 숫 자에 일찍 관심을 보이고 정규 교육을 안 받아 도 잘 읽고 셈한다

6.유아임에도 불구하고 어구와 간단한 문장들을 잘 이해한다〓‘책을 가져오면 읽어줄게’라는 말에 책을 가져와 들을 준비를 한다

7.다른 애들보다 단어와 문장들을 빨리 말하기 시 작한다〓만 1세가 되기 전 단어를 말하거나 완 전한 문장을 말한다

8.행동발달이 빠르다〓퍼즐 맞추기를 잘하고 사 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잘 따라한다

9.새로운 것을 배울 때 강한 호기심과 즐거움을 나타낸 다〓혼자 책을 읽거나 동 화책을 들려줄 때 장시간 인내심 있게 잘 앉아 있는 다

10.유머감각이 뛰어나거나 부조화를 재미난 것으 로 여긴다〓농담이나 말장난을 하기도 하고 말 솜씨가 재치 있다

11.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정도로 이해 력이 높다〓어떤 생각을 어른이 잘 이해하지 못 한다고 여기면 상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12.어른이나 나이 많은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편 안해 한다〓어른이나 나이 많은 형제와 게임하 고 놀기를 좋아한다

13.리더십을 보인다〓또래 친구들이 놀 때 즐겨 찾거나 다른 친구들을 잘 설득 한다

14.독창적이면서 임기응변 에 강하다〓기발한 생각으 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거나 상상력을 동원해 가상 친 구와 오래 논다

15.어떤 과제 수행을 위해 가상의 방법을 사용한다〓자기가 하기 싫은 일 을 시킬 때 적절한 논리로 설득하거나 목표 달 성에 열정적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영재교육연구정보센터(GERRIC)가 자녀의 영재 판별을 위해 상담하러 왔을 때 부모들에게 먼저 작성하도록 만든 응답지. 항목별 설명은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제시한 사례 가운데 하나. 항목마다 0(전혀 아니다) 에서 10(많이 그렇다)까지 11단계로 점수를 나눠 부모가 점수를 적도록 했고 항목별로 구체적 사례도 쓰게 돼 있다. 이 질문지(객관적 자료)를 기초로 교사와 학부모 상담(주관적 자료)을 통해 종합적으로 영재 여부를 판단한다.

<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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