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중요한 건 진실이야!<리멤버 타이탄>

  • 입력 2001년 3월 28일 16시 09분


"타이탄을 기억하라"는 짐짓 은유적인 표현을 썼지만 <리멤버 타이탄>이 하고자 하는 말은 단 하나다.

"중요한 건 피부색이 아니라 영혼이야!"

현재 진행형인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를 회고조로 되짚는 이 영화는 미국인들이 걸어온 흑백갈등의 역사를 '다이제스트 북'으로 축약해 보여준다. 흑백 갈등이 심했던 남부 버지니아, 그 중 '단결'이 최고 미덕이 되는 스포츠 현장, 그 중에서도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인 풋볼 경기장으로 포커스를 좁힌다.

정글 같은 세상의 단면을 닮은 풋볼 경기는 확실히 '흑백 화합'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데 제격이었다. 쉽게 섞일 수 없었던 두 인종이 화합해 가는 과정은 5분에 한번씩 눈물을 쏟게 할만큼 위력적이다. "이것은 실화입니다"라는 단서를 달고 시작한 탓일까. 감동은 러닝타임이 거듭될수록 두 배 세 배로 커진다.

하지만 아무리 슬프더라도 <리멤버 타이탄>의 '신화'를 순진하게 다 믿어버리면 안 된다. <리멤버 타이탄>은 가짜를 적당히 섞어놓고도 모두 진짜인 척하는 아주 '여우같은 영화'기 때문이다.

영화가 전해주는 '진실'은 다음과 같다. 1971년 미국 버지니아주 한 고등학교 풋볼 팀. 흑인학교와 백인학교의 통합이 제기되면서 T.C. 윌리엄스 고등학교는 흑백 통합 시범학교로 선정된다. 연승 신화를 자랑했던 이 학교 풋볼 팀 '타이탄' 부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단합하지 않으면 승리도 없다"는 스포츠의 제1법칙을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

게다가 흑인학교 풋볼 팀 감독 허만 분(덴젤 워싱턴)과 백인학교 풋볼 팀 감독 빌 요스트(윌 패튼) 중 한 사람은 코치로 밀려나거나 퇴진을 해야할 형편이므로 두 학교의 흑백 갈등은 더욱 첨예해진다. 흑인들의 분노에 찬 눈길을 의식한 알렉산드리아 시는 타이탄의 풋볼 팀 감독을 결국 허만 분으로 내정하고 빌 요스트는 코치로 밀려난다.

이런 상황에서 허만 분은 상처 입은 독재자 스타일을 고수한다. 그는 아이들을 캠프에 몰아넣고 "화합하지 않으면 승리도 없다"는 진실을 냉혹하게 가르친다. 반면 빌 요스트는 허만 분의 넘치는 카리스마를 따뜻한 아량으로 감싸안는다. 흑과 백으로 갈렸던 아이들이 한 데 어우러지면서 '타이탄'의 전력은 점점 더 막강해지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타이탄 팀은 위기에 직면한다. 결승전을 며칠 앞둔 어느날 팀 주장 게리 버티어(리안 허스트)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하반신 불수가 되었기 때문.

물론 이들은 이 엄청난 시련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타이탄을 기억하라"는 말이 "흑백 화합의 중요성을 기억하라"는 말과 동의어가 될 만큼 그렇게 멋진 한 팀을 이루어냈다.

"실화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지 않냐"고 말하는 이 영화는 언급했듯 완전한 실화가 아니다. 영화가 꾸며낸 '진실'은 다음과 같다. 원래 게리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음주운전을 하다 하반신 마비가 된 것이며 "흑인 친구만 면회를 받고 싶다"고 울부짖었던 적도 없다.

허만 분의 독재주의를 완화시킨 온화한 백인 감독 빌 요스트는 영화 속에서 한 명의 풋볼 마니아 딸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 요스트에겐 3명의 딸이 더 있었다. 이중 풋볼 마니아였던 딸 셰릴은 34세에 심장병으로 사망했고, 요스트는 죽은 딸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다시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리멤버 타이탄> 촬영에 열성을 다했다.

빌 요스트의 심정을 담아 말하면 이 영화는 "셰릴을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바꿔 불러도 무방할 듯.

<리멤버 타이탄>은 선댄스영화제 화제작이었던 'Fresh', 르네 젤위거 주연의 'A Price Above Rubies' 등을 연출했던 보아즈 야킨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배우들이 직접 16mm 카메라로 담아낸 생생한 풋볼 경기가 인상적이며 간간히 흐르는 70년대 히트넘버들도 듣기 좋게 귀에 감긴다. 작위적인 감동주의에 화가날 즈음 한번씩 터져나오는 70년대 고전 음악들('A Hard Rain's A-Gonna fall'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등)은 얼었던 마음을 노곤히 풀어준다.

(원제 Remember the Titans/감독 보아즈 야킨/제작 제리 브룩하이머/주연 덴젤 워싱턴, 윌 패튼, 리안 허스트/개봉 4월14일/러닝타임/홈페이지 http://disney.go.com/disneypictures/rememberthetitans/flash/index.html)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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